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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날아든 송이버섯, 호미를 쥔 딸

입력
2024.10.23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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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김도담

송이버섯 ⓒ김도담

자동차 운전석 옆자리 창문을 열자 느닷없이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또 바람같이 사라진 이웃. 흡사 방송에서만 보던 범죄자들의 나쁜 물건 거래 수법같이 은밀하고 민첩했다. 비닐봉지 속에는 키친타월로 감싼 둥그렇고 딱딱한 무언가가 담겼다. 실물로 처음 접한 송이였다. 버섯의 왕이자 귀한 식재료로 알려진 송이를 이곳, 홍천살이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맛봤다.

매년 9월에서 11월까지 홍천 중장년층의 가장 큰 화두는 버섯이다. 싸리를 시작으로 능이, 송이까지 산 좀 오른다는 지역 토박이들은 심마니가 아니더라도 매년 이맘때면 새벽부터 산에 오른다. 그들은 각자 자신만 알고 있는 자리에 찾아가 버섯 근황을 확인하고 올해의 작황을 공유한다.

1년을 기다려 귀하게 얻은 버섯은 수매처에 팔리기도 하고 가족들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한다. 이 지역의 '버섯 부자'들은 버섯 보관법도 색다르다. 싸리는 소금물에 절여 장아찌처럼 보관해 먹고, 능이는 살짝 데친 후 냉동 보관해 백숙 등에 곁들여 1년을 두고두고 먹는다.

지역 토박이와 친구가 되면 백화점 선물 코너에서만 보던 값비싼 식재료를 얻을 기회가 생긴다. 채소가 많이 나오는 계절에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만 해도 노지에서 직접 키운 호박이며 오이 선물을 챙겨 주신다. 이렇게 귀한 식재료가 생기면 나는 줄곧 부모님에게 이 근황을 전했다. 제철 채소로 해 먹은 음식 사진을 보내거나 주말이면 채소 보따리를 들고 서울 집으로 향했다.

ⓒ김도담

ⓒ김도담

아빠가 암 투병을 시작하고부터는 내 주위에서 더 많은 이들의 온정이 도착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직접 구매한 대형 생선을 볕에 말려 주말이면 서울로 가는 내 손에 들려 보냈다. 투병 중인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몰라 한없이 무기력해졌을 때에는 내 손에 호미를 쥐여줬다. 그는 나에게 작은 텃밭을 내어주고 유기농 채소를 키울 수 있게 도왔다. 텃밭 가꾸기에 푹 빠진 사실이 소문이 났는지, 너그러운 품성의 한 지역 어르신은 자신의 밭 두 고랑을 내어주며 고구마를 심으라고 했다.

도시 생활만 해온 딸이 갑자기 귀촌을 결정하면 대다수의 부모님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내가 서울에 들고 간 제철 식재료는 '나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대신하는 표식이 되었다. 엄마는 "홍천에서 이렇게들 챙겨 보낸다니까"라는 말을 자랑같이 하기도 했다. 항암치료로 입맛이 없던 아빠는 내가 해준 채소 요리라면 '어릴 때 먹던 맛'이라며 열심히 드셨다. 아빠는 암 투병을 시작하고 임종까지 2년여 동안 딸이 홍천에서 공수한 온정을 맛봤다.

아빠가 떠나고 한 달여가 지났다. 올해도 이웃의 송이 보따리가 도착했다. 9월까지 이어진 폭염 등 이상기후로 송이 수확량이 급감했다고 한다. ㎏당 가격이 16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양의 송이가 전달됐다. 나는 엄마와 송이를 듬뿍 찢어 넣은 향긋한 밥을 지어 먹었다.

자연 속 사색, 이웃의 제철 채소 꾸러미, 동료들이 전해 준 마음이 이곳에서의 나를 하루하루 치유하며 살게 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로컬의 '황금 인맥'이 쌓여가는 가을이다.




김도담 지역가치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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