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실 : 딥페이크 그후>
①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인스타 DM방에서 손녀 괴롭혔던 아이들
나체 사진 합성하고, 패드립하며 'ㅋㅋㅋ'
용기낸 신고 학생, 견디다 못해 전학 선택
피해자는 여전히 가해자와 같은 교실에…
편집자주
그 아이의 일상이 지워졌다. 더는 SNS에 추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할 수 없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마음 편히 수다 떠는 게 두렵다. 댄서가 돼 무대에 서겠다는 꿈도 사라졌다. 지난여름, 우리 사회를 분노케 한 딥페이크 사건 피해자들의 지옥 같은 풍경이다. 사회적 관심은 계절이 바뀌며 싸늘하게 식었고, 홀로 남겨진 10대들은 더 기댈 곳이 없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는 어린 피해자와 가해자가 유독 많은 국내외 딥페이크 사건 그 후를 추적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교실 안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박은석(67)이 아픈 허리를 주무르며 부엌 목조 식탁 의자에 걸터앉았다. 지난밤에도 잠을 못 이룬 탓에 몽롱해 보였다. 아침 햇살이 드는 창 옆의 대형 액자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두 손주들의 사진이 있었다. 이 집에 입주할 때 아는 동생이 촬영해줬다. 은석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은석의 가족은 지난해 12월, 생전 처음 동네를 옮겼다.
"원래는 강원도의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지은 지 50년쯤 된 낡은 흙돌집에 살았죠. 비바람이 거센 날엔 집 앞 울타리가 무너져 온 가족이 도망치듯 허름한 모텔로 가서 며칠씩 묵기도 했어요."
태풍이 들이치면 주변 물푸레나무 두 그루가 집을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커질 무렵 좋은 소식이 들렸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도움으로 공공 임대 빌라로 이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방 두 칸, 24평(79㎡) 작은 공간이지만 더는 마음 졸이며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됐기에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손녀 가연(13)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다만, 가연이가 친구가 없는 새 동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게 마음에 걸렸다.
패드립과 함께 가연이 사진이 올라왔다
학기 초 교실 안을 채웠던 어색함이 재잘거림으로 바뀌던 4월, 최은지(13)는 인스타그램 단체 대화방(DM방)에 초대받았다. 방에는 같은 반 남녀 학생 10명 정도가 있었는데 부반장 등 학급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방 이름이 특이했다. ‘가연이 팬클럽.’ 학교에 춤을 특기 삼아 예술고 진학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은지는 가연이도 그중 한 명일 것으로 짐작했다. 아이들은 DM방에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올리며 정보를 공유했다. 하지만 방 이름이 바뀌면서 대화방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남녀 성기를 빗대 ‘OO 빠는 방’ 등으로 변경됐다가 먹방 크리에이터(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이름인 ‘XX얌’으로 바뀌었다. 은지는 그제서야 아이들끼리 하던 알 듯 모를 듯한 말뜻이 이해됐다. 또래에 비해 체격이 큰 가연을 대화방에서 조롱하고 있던 것이다.
DM방 아이들은 가연을 과녁 위에 세워둔 채 성적인 조롱과 혐오의 화살을 멋대로 날렸다. ‘패드립’(패륜+애드립∙상대 부모 등을 욕하는 것)도 주저 없이 했다. DM방의 한 여학생이 가슴을 확대한 뚱뚱한 성인 여성 사진을 올리자 김희진(13)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이거 가연이 엄마임.”
어른들이 제어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아이들은 ‘악행의 질주’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교실에서 가연이를 몰래 촬영한 뒤 사진 앱으로 얼굴을 우습게 만들어 돌려봤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졌다. 방학을 앞둔 7월 말, 희진이 가연의 얼굴에 비키니와 속옷 차림의 여성 몸을 합성한 가짜 사진 4, 5장을 만들어 DM방에 올렸다. 이후 아이들은 브레이크가 완전히 망가진 듯 수위를 높여갔다. 다른 여자 아이도 사흘 뒤 여성의 나체 뒷모습과 가연의 얼굴을 합성해 공유했다. 남자 아이들도 가세했다. 이승국(13)이 메시지와 사진 몇 장을 올리자 아이들의 스마트폰이 일제히 울렸다. ‘내 최애(가장 좋아하는) 사진임.’ 그는 가연의 얼굴에 가슴골이 깊이 파인 핑크옷이나 비키니, 검정 속옷 사진 등을 합성했다. 다른 아이들은 공감 하트를 누른 뒤 앞다퉈 메시지를 올렸다.
'ㅋㅋㅋㅋ', '존X 섹시해'···.
대화방에서는 이보다 훨씬 심한 말들이 오갔다. 승국은 DM방의 다른 남자 아이들이 성적 발언을 하면 ‘가연이 보고 풀어’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괴롭힘은 교실에서도 벌어졌다. 희진과 친구들은 가연이 가지고 다니는 펭귄 모양 팔베개의 부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가연이 젖꼭지 같네.” 베개를 물어 적신 뒤에는 “가연이 젖었다”라고 했다.
가연에게 닥친 기막힌 일은 10대 여성들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딥페이크 사건들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도 성적 가해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검거된 딥페이크 가해자의 97.7%가 남성(지난 9월 기준)이었다. 다만, 26년째 아이들이 연루된 성(性) 사건을 관찰해온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딥페이크 범행이 꼭 성적 쾌락과 관련 있는 건 아니라고 진단했다. 엉망이 된 우리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버 괴롭힘의 진화한 형태라는 것이다.
“괴롭히고 싶은 또래를 가장 심하게 모욕하려고 성적인 가짜 사진을 만드는 거죠. 아이들이 게임할 때 패드립을 많이 하는 이유도 비슷해요. 상대 부모를 성적 대상화해야 정신적으로 가장 흔들린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애플리케이션에 얼굴 사진을 넣고 2, 3번만 클릭하면 몇 초 만에 나체 딥페이크를 뚝딱 만들 수 있는 세상. 가해자들에게는 '신세계'가 열린 셈이다.
보호받지 못한 신고자
10대 초반 아이들이 또래 여학생 한 명을 두고 낄낄대며 조롱을 일삼던 DM방. 그곳에 균열을 낸 건 은지였다. 그는 가연의 합성 사진이 올라오고 며칠 뒤 방을 나갔다. 화나고 놀랐지만 이를 어른들에게 알린다는 건 방을 탈출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다. 은지는 가해 학생들과 앞으로 2년 넘게 이 학교에서 함께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던 은지로서는 DM방 사건을 남 일처럼 여길 수 없었다. 딸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은지의 어머니도 당혹스러워했다. 온라인 대화방에서 보인 가해자들의 면면이 실제 만났을 때 받았던 인상과는 너무 달랐던 까닭이다.
"평범한 학생들처럼 보였어요. 공개 수업 때 몇몇 아이들은 '은지 어머니, 안녕하세요'라며 공손히 인사까지 했죠."
은지는 여름방학이 끝난 8월 12일 담임 교사를 찾아가 학교의 눈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이후 가해자들은 한 명씩 학생안전부에 불려 갔다. 그러자 무리들은 신고자를 색출하려는 듯 은지를 압박했다. DM방에서 가연에게 성희롱 발언을 쏟아냈던 부반장은 은지에게 "너는 대화방에서 나갔는데 왜 학생부에 불려 갔을까"라고 말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DM방에 있지도 않았던 친구의 언행이었다. 그 아이는 8월 은지와 인스타그램의 친구 관계(팔로)를 끊었다. 은지가 이유를 묻자 "나 원래 안 친한 애들 정리해, 너 애들 배신하고 신고했잖아"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원이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학급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신고자와 방관자, 그리고 동조자가 뒤섞여 있었다. 견디다 못한 은지는 전학을 갔다.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 상담을 해온 김민주 리프레임 교육연구소 대표는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또래끼리 무리 지어 한 아이를 괴롭힐 때는 죄의식이 없어져요.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는 게 아니라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죠.”
실제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괴롭힘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초4~고3 학생 9,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딥페이크 등 사이버 폭력을 목격했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비율이 26.7%였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26.6%)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19.5%) △나도 피해자가 될 것 같아서(13.3%)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신고한 순간 자신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는 얘기다. 학교나 부모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SNS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잡아내려면 또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신고해도 안전하다'고 확신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계속 침묵할 가능성이 높다.
죄 없는 아이들만 떠나게 하는 학교
9월 19일, 은석은 이른 아침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녀 가연과 함께 교육지원청에서 열리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출석했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몇 번 두드리고는 회의실로 들어섰다. 심의위원장 등 7명의 위원이 앉아 있었다. 위원장은 가연과 은석에게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길 요구하느냐"고 물었고, 둘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위원장의 질문이 늙은 은석의 마음을 후벼 팠다.
"혹시 가연이가 전학 갈 생각은 없습니까?"
가연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말일지도 모른다. 피해 학생이 보호받으려면 괴롭힌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가해자 전원에게 가장 강한 처분인 강제 전학 명령을 내리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탓이다. 하지만 어떤 뜻에서 말했든 2차 가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은석은 비바람을 피해 가족들과 도망치듯 모텔로 떠나던 여름날이 떠올랐다. 위원장의 말은 마치 '피해자가 도망치듯 떠나라'는 메시지 같았다.
2주 뒤 은석의 집에는 등기우편 한 통이 도착했다. 가해자 조치 내용이 담긴 통보서였다. 조작 사진을 만든 두 명(희진, 승국)은 학급을 바꾸도록 했고, 가해 사실이 인정된 나머지 6명에게는 교내·외에서 10시간 안팎 봉사활동을 하거나 가연에게 서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고 돼 있었다. 전학 처분을 받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학급 교체는 전학 다음으로 강한 처분이라고 했지만 은석은 납득할 수 없었다.
"가장 심하게 괴롭힌 녀석들은 전학을 보낼 줄 알았죠. 그동안 손주들에게도 '무조건 착하게, 남에게 피해 끼치지 말고 살라'고 가르쳤는데… 내가 바보였네요."
손녀가 겪은 일을 알게 된 뒤 할아버지는 몇 번을 통곡했다. 우울 증세와 무기력감도 심해졌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경찰에 가해자들을 고소했고 강원경찰청이 두 달째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가해자와 같은 교실에 갇힌 피해자
가연에게 20평(66.6㎡) 크기의 교실은 가해자와 함께 갇혀 있는 감옥 같다. 수업 시간 중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의 뒤통수가 보이고, 쉬는 시간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주변의 행동에 예민하지 않은 과묵한 아이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여러 번 꺽꺽 울었다.
용서할 마음은 없다. 학폭 결정이 나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자 가해 학생 부모 2, 3명이 학교를 통해 사과 편지를 뒤늦게 보내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은석과 가연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가해 학생들의 '죄의 흔적'은 지워질 수 있다. 3호 처분(학내 봉사)까지는 졸업과 동시에 생활기록부에서 삭제된다. 4·5호(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는 졸업 후 2년까지, 6·7·8호(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는 중학교 졸업 후 4년까지 기록으로 남는다. 하지만 졸업 직전 학교에서 심의해 학폭 기록을 삭제해 줄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피해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아동청소년 사건을 다뤄온 서혜진 변호사는 “10대 딥페이크 범죄는 괴롭힘으로 시작한다. 혐오를 조장하고 계급·계층을 나누고 타인의 기본권 침해에는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며 "결국 어른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사건은 잊히고 있지만, 은석은 손녀의 마음이 여전히 걱정된다. 그는 이맛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이번 일을 겪고 세상을 더 못 믿게 됐어요. 잘해주면 나만 이용당하는 것 같고. 70년 가까이 산 나도 이런데 가연이는 어떻겠어요. 이제 누굴 믿겠냐고요.”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 기자(엑설런스랩), 김태연 기자(사회부), 정다현 기자(코리아타임스), 이지수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 기자, 류기찬 인턴기자
영상 : 박고은·이수연·김용식·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김가현 인턴PD, 전세희 모션그래퍼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를 당한 아동∙청소년과 그 가족, 주변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딥페이크 피해와 그 이후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학교 안팎에서 겪은 부조리, 2차 가해 등이 있으시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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