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보 체제에 1㎜의 빈틈이 보여도 그것은 이미 안보가 아니다
1992년 남북 고위급 화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됐다.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기반을 다지고, 나아가 통일 환경을 구축한다는 장기적 안보 전략을 깔았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 주한 미군의 전술핵 전체를 자진 철수시키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북은 이 선언을 함께하고도 뒤에서 핵무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40여 년간 한국은 이 선언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비핵화에 노력해 왔다. 만일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남북 간 전략적 비대칭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동북아 평화 질서를 뒤흔들 것이 명백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한미안보협의회의를 개최했는데 북한 비핵화를 논의하지 않았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비핵화보다 핵을 억제하는 협력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안보 전략상 매우 위험천만한 사건이다.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 현대화를 해도 좋다는 신호를 발신했다고 본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감돌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라 랩 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선임보좌관은 지난 3월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 조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간 조치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북한의 핵동결-감축에 상응한 대북 제재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세계 안보환경 변화 추이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 6월 포괄적 전략적동반자조약을 체결한 지 6개월 만에 전투 병력(일명 폭풍사단 포함)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북한은 그 대가로 고급 군사기술 이전뿐만 아니라 핵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인정도 기대할 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 지형을 크게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한국에 전략무기 공급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전략무기를 공급한다면 전장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전쟁 강도를 고도화시켜 한국의 평화 기반을 파괴시키는 충격이 예상된다. 이 충격은 미국 등 나토 32개국이 참전하는 국제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러 안보협력은 양국의 안보협력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1월 2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서방이 본격 참전할 때는 3차 세계대전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 협박은 한국에도 해당된다. 요컨대 북핵 억지와 비핵화 실현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초석이다. 중간 단계 인정은 자칫 북한과 미국의 핵군축 협상을 열어 놓는 위험한 사고다. 이 논리에 어떤 주장이나 사족이 첨가되는 것이 허용돼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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