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작9·가나다순>
조해진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
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7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단편소설 ‘빛의 호위’를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로 다시 쓰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믿고 싶었다”고 조해진은 작가의 말에 썼다. 그것은 ‘빛의 호위’에서 ‘권은’이 ‘나’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 믿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사의 현장에서 한 다리를 잃은 권은이 한국으로 후송될 때 그 보도를 보던 이의 “저리 위험한 데를 굳이 가서 세금을 쓰게 하네”라는 반응에서 참사에 대해 그만하라고, 그 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는 이들의 목소리가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장인 ‘나’는 담임의 부탁으로 장기결석 중인 같은 반 학생 권은의 집을 방문한다. 어둠 속에서 녹슬고 찌그러진 현관문 손잡이가 쇳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얼결에 문을 열게 된 뒤에도 나는 암순응되지 않는 두 눈을 껌뻑이며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다. “거, 거기, 권은 집 맞아요?”
어둠 속에서 부옇게 빛나는 것은 점등된 스노볼이다. 눈 내리는 마을에 불이 들어오고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권은은 위로를 받는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권은이 죽고, 또 그러면 그 책임을 반 아이들이 자신에게 물을라 ‘나’는 만화책이나 건전지 등을 가지고 권은의 집을 방문한다. 아버지의 후지사 카메라를 권은에게 준 것은 그것이 제법 돈이 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은은 카메라를 파는 대신 방 안의 사물들을 찍고 더 많은 풍경을 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빛과 멜로디’에서 조해진은 단편소설 ‘빛의 호위’의 시공간을 오래전 전쟁의 참상에서부터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으로 넓혀 간다.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물들은 서서히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기적처럼 이야기를 엮어 간다. 승준(나)의 호의가 권은에게로, 권은의 호의가 살마에게로, 살마의 호의가 나스차에게로. 이 연대에는 권은이 처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순간,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의 온기가 담겨 있다.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면서 조해진은 사진가 게리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작업의 한계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는 듯하다. “배경은 아름답고 구도는 안정적이되 그 안의 사람들은 더 아프고 더 불쌍하게 보이는 사진. 혹은 끊임없이 잔인한 이미지를 징집해서 찍은 사진이 과연 세상의 분쟁을 막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심. 그건 들판에 버려진 시체를 찍을 때도 노을이 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르는 사진기자에게 진실을 보여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그러나 일단은 사진이 지면에 실려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아이러니.
암순응의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이 보이고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위해 우리는 우리 안의 느슨해진 태엽을 감는다. “망각되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조해진의 진심 덕분이다.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