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지갑 닫는 서민들]
3분기 의류·신발 지출 역대 최저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요노족' 등장
"니트 한 장에 16만 원?"
직장인 홍모(28)씨는 쇼핑몰에서 겨울옷을 사려다 가격표를 보고 화들짝 놀란 최근 경험을 털어놓았다. 예전엔 코트를 살 수 있었던 돈은, 이제 겨우 얇은 니트 상의 한 벌 값이다. 홍씨는 "요새 옷값도 많이 올라서 정가에 구매하기보단 시즌오프까지 기다리면서 이월 상품을 사려고 한다"며 "올해 들어 소비 습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주부 황모(57)씨도 최근 백화점에 들러 새 패딩을 장만하려다 옷값에 놀라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황씨는 "최소 30만 원부터 시작하는 패딩 가격이 부담스러워, 결국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중고 패딩을 구매했다"고 전했다.
한 번 치솟은 물가가 내려올 조짐을 보이지 않으며, 겨울용품을 마련해야 할 소비자들의 지갑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번 겨울엔 비싼 새 옷을 사지 않거나 대규모 세일을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고, 붕어빵 같은 겨울철 별미을 살 때도 좀 더 싼 곳을 찾아 발품을 판다. 대통령까지 나서 '내수·소비 진작 대책 강구'를 지시했으나,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예상에 시민들은 의식주 소비 눈높이를 점점 낮추고 있다. 이런 소비 부진이 자영업 불황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필수재든 사치재든 허리띠 '꽉'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290만7,000원 중 의류·신발 지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6% 감소한 11만4,000원이었다. 소비지출에서 의류·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이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며 일상생활에서 지출을 최대한 줄이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읽힌다. 의류뿐 아니라 외식을 줄이고, 바깥 활동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직장인 박모(28)씨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카페에서 만나 의견도 공유하고 식사도 했는데, 요새 비용이 부담 돼서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 비용이 드는 헬스나 필라테스 대신, 뛸 장소만 있으면 되는 '러닝'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료 가격이 오른 탓에 겨울철 서민 간식인 붕어빵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2일 지역생활 플랫폼 당근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이 사이트 내 '붕어빵' 검색량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당근이 마련한 '붕어빵 지도'에 이용자들이 가격 정보를 적극적으로 올리며,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는 이모(60)씨는 "경기가 어려워져 사람들이 과일부터 안 사먹기 시작하니 최근 붕어빵 기계를 가게 앞에 놨다"며 "재료값과 가스비를 제외하면 붕어빵 판매로 매일 2만~3만 원 정도밖에 안 남지만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이어가야지 어쩌겠느냐"라고 하소연했다.
해외여행도 항공·숙박비가 싼 여행지 정도만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윤모(28)씨는 "상대적으로 경비가 적게 드는 일본이나 동남아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이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여행을 포기할까도 고민 중"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여행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지난달 발간한 '2024년 10월 국내·해외여행 동향’ 보고서를 통해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여행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 통제하자"...'요노족' 급증
고물가 여파로 실용적 소비를 추구하는 '요노(YONO)족'이 크게 확산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요노족은 '필요한 것은 하나뿐(You Only Need One)'이라는 영어 문장의 약자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구매는 최대한 줄이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로 떠올랐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현상'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농산물 가격 급등 등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지 않는 한 소비를 통제하는 소비 패턴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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