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사용 우려로 임신 중절 12%
항정신성 약물 우려는 오해
기형 유발 예방, 임신 전부터 엽산 복용해야
“임신 중절 사유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나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약 70% 정도 됩니다. 임신 전후 사용한 약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임신 중절하는 비율도 약 12%예요. 국제적으로 보면 통상 태어난 신생아와 임신 중절 규모가 비슷하니까 약물과 관련한 질병 발생을 우려해 약 2만 건 이상의 임신 중절(지난해 신생아 23만 명)이 이뤄졌을 거라 추정할 수 있는 거죠.”
인제대 일산백병원 한정열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달 28일 “임신 전후 복용한 약물 부작용으로 태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라며 말했다. 이날 경기 고양시 소재 일산백병원에서 만난 그는 “약을 잘못 써서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은 전례가 이미 많이 있기 때문에 임신 전후 약물 사용은 중요한 문제”라며 과거 1950년대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태에 대해 말을 이었다. “임산부의 약 80%가 입덧을 하거든요. 그런데 1950년대 중후반 독일에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당시 임산부들이 많이 복용을 했어요. 하지만 이 약을 먹은 산모에게선 사지가 없거나 짧은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수가 전 세계적으로 1만 명이 넘어요.”
그러나 한 교수는 “임신 전후에 약물을 복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태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물 복용과 임신의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숙지하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오해를 사는 게 항정신성 약물이다. 일례로 벤조디아제핀은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해 불안감을 낮추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불안 완화나 불면증 치료 등에 쓰인다. 그는 “기형을 유발하는 뇌전증 약과 달리, 항우울제를 포함한 항정신성 약물은 비교적 안전한데도 모두 뭉뚱그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항정신성 약물은 의사와 상담해 적정량을 복용하는 게 산모에게도, 태아에게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여드름 치료에 흔히 쓰는 이소트레티노인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연간 약 97만 건이 처방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지만 해당 약물에 노출된 태아의 약 10% 이상에서 기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돼 있어서다.
실제 한 교수가 미국‧캐나다‧독일 등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10편에 나온 이소트레티노인 복용 임신부 2,783명을 분석한 결과, 이소트레티노인 복용 임신부의 기형아 출산율이 15%로 나타났다. 기형은 두개골과 얼굴, 심장, 목, 손가락 등에 주로 발생했다. 그는 “과거보다 저용량으로 처방하기 때문에 노출 시기가 임신 4주 이전이라면 비교적 안전하다”면서도 “여드름 약은 보통 가임기 여성이 많이 쓰는 만큼 약 처방 시 반드시 사전에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경련제인 발프로산도 무뇌아, 척추이분증 등 신경계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다른 약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한 교수는 “병원을 찾은 산모 중 임신 초기 발프로산에 노출된 태아에 기형이 발생해 임신 중절 후 다른 항경련제인 카르바마제핀으로 바꿔 정상 출산한 이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미국 인디애나대 의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발프로산을 복용한 여성이 출산한 아이는 항경련제를 쓰지 않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위험이 2배 안팎 높았다. 다른 항경련제인 라모트리진, 카르바마제핀에선 이런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교수는 “태아에 대한 영향은 복용한 약물과 함께 태아가 약물에 노출된 시기, 용량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아에게서 기형 발생을 예방하려면 임신 전부터 엽산을 복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엽산제의 날’까지 지정하며 캠페인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엽산은 태아에게서 기형과 저체중, 자폐증 등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요. 보통 임신 전부터 복용하는 게 좋은데, 우리나라의 임신 전 엽산 복용률은 35% 정도밖에 안 됩니다.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엽산제를 미리 복용하면서 계획 임신을 하는 게 좋습니다.”
결혼 시기가 늦춰지면서 나타난 고령 임신에 대해선 “산모의 나이가 많다고 해서 태아의 기형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유산이 잘 되고, 난자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염색체 이상이 발생할 공산은 높아진다. 한 교수는 “엽산을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고령 임신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고, 다운증후군과 같은 염색체 이상은 검사를 통해 99%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 임산부에게서 중요한 건 임신중독증(임신 고혈압)을 예방하는 거예요. 임신 34주 이전의 조기 임신중독증으로 수명이 10년 단축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가족 중에 임신중독증을 앓은 사람이 있다면 임신 12주부터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반드시 복용해야 합니다. 다른 만성질환도 상담을 통해 적정량을 복용한다면 임신 중에도, 출산 후 수유 중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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