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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뜻이 안 떠오른다고? 뇌 손상 빠른 '조발성 치매' 주의보

입력
2024.11.26 10: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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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데 65세 이전에 발병해 간과
성격 변화·우울감 등 다양한 증상에 진단 늦어
연말 신약 상륙...초기 치매 치료 도움 기대

강성훈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가 지난 19일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에서 조발성 치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강성훈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가 지난 19일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에서 조발성 치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건망증 중에도 이런 게 있어요. 어떤 단어를 들었는데 갑자기 그 단어의 뜻이 뭔지 모르겠는거예요. 아니면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그때 그랬었잖아'라고 기억을 떠올릴 도움말을 줘도 도통 기억이 안 나는 경우라면 치매 검사를 받는 게 좋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에서 만난 강성훈 신경과 교수는 만 65세 이전에 나타나는 조발성 치매(초로기 치매) 빈도수가 늘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조발성 치매 환자군은 60대 초반이 가장 많지만 50대에서도 왕왕 발병한다. 예후는 노인성 치매보다 훨씬 좋지 않다. "노인성 치매의 90% 정도가 기억력 저하가 나타난다면 조발성 치매는 그 비율이 절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언뜻 치매와 관련 없어 보이는 증상도 많습니다. 성격이 바뀌어 갑자기 화를 잘 낸다거나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생각하는 대로 말이 제대로 안 나오거나 문법에 맞지 않게 말을 하는 언어장애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증상은 조발성 치매의 진단을 늦추는 원인이다. 강 교수는 "성격 변화가 치매와 관련돼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렵고, 우울증‧무기력감 관련 약을 먹다가 다른 증상까지 나타난 후에야 뒤늦게 조발성 치매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조발성 치매가 더 위험한 이유는 노인성 치매보다 뇌세포 손상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위암도 30대 젊은 나이에 걸리면 예후가 더 안 좋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말을 이었다. "노인성 치매는 진단 후 10년이 지나도 대화를 어느 정도 하고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할 수 있는 반면, 조발성 치매는 진단을 받고 난 뒤 5년이 지나면 보호자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조기 진단과 건강관리가 중요합니다."

조발성 치매 예방법은 일반 치매와 동일하다. 중년층은 비만도가 높거나 당뇨병 등 대사질환이 있을 경우 노년이 됐을 때 치매를 앓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만큼 체중 조절 등에 신경 써야 한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체질량지수(BMI)가 32인 40~60세 중년 5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내장 지방이 두꺼울수록 전두엽 피질 부위에서 더 많은 양의 아밀로이드(치매 유발 단백질)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BMI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비만도를 측정하는 대표 지표다. BMI 32는 고도비만(35 이상)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노년기 때는 오히려 반대다. 저체중보다 '건강한 비만'이 치매 예방에 유리하다. 강 교수가 참여한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아밀로이드 축적 위험도를 나타내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양성 비율은 비만 그룹(37.0%)보다 저체중 그룹(73.9%)에서 높게 나왔다. 치매가 없는 45세 이상 한국인 1,736명을 BMI에 따라 저체중(18.5 미만), 정상, 비만그룹(25 이상)으로 구분한 뒤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 등을 진행한 결과다. 강 교수는 "하루에 30분 이상씩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는 게 좋고, 영어공부나 글쓰기 등 머리 쓰는 활동을 자주하는 것도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뇌에 켜켜이 쌓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 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결국 치매로 이어진다. "빵빵했던 축구공이 바람이 빠지면서 쪼글쪼글해지는 것과 비슷해요. 쌓인 아밀로이드를 떼어낸다면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올해 연말 국내 상륙을 앞둔 새로운 약물(레켐비)이 치매 증상이 심하지 않은 초기 치매환자나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료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치매 관련 약물은 인지기능이나 기억력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잘 작용하도록 도왔다면, 이번 약물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뇌에 아밀로이드가 쌓여 있지만 치매 증세가 없거나, 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부작용은 발열‧두통‧발진 등 알레르기 반응과 뇌출혈‧뇌부종 등이다. 강 교수는 "분해한 아밀로이드 조각이 배출될 때 뇌혈관을 쓸고 지나가면서 혈관 자체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심한 뇌출혈은 1,000명당 1명 수준이고 대부분은 무증상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다만 무증상 뇌출혈이라도 인지하지 못한 채 약을 계속 복용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 여부 판단을 위해 정기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할 필요가 있다.

투약 방법은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를 맞는 방식으로, 18개월 정도 맞아야 한다. 몸무게 70㎏ 기준 1년에 소요되는 비용은 2,900만 원 안팎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으로 출시 예정이라 향후 비용 부담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강 교수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4,000명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최근 대한신경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향설 젊은 연구자 상'을 받기도 한 강 교수는 "환자별 효과‧부작용 여부를 예측해 처방하는 항암제처럼 치매 관련 약물치료도 예측 모델을 만들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향설 젊은 연구자 상은 만 40세 이하 신경과학회 회원 중 최근 2년간 우수 논문을 다수 발표한 이에게 수여한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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