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유지하려다 힘 못 쓰고 계엄 해제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전격적으로 계엄을 선포했지만 ‘6시간 천하’로 어설프게 끝났다. 군 경험이 없어 작전 이해도가 낮은 통수권자와 뒤에서 부추긴 독불장군 국방 장관의 '컬래버' 결과다. 무엇보다 둘 모두 군 내부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극히 제한적인 인원만 머리를 맞대고 무모한 계엄에 나섰다가 망신살만 뻗쳤다. 아울러 우리 군의 사기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며 씻지 못할 과오를 남겼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이번 계엄은 김 장관의 건의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사안의 중대성을 의식해 계엄 계획을 극소수만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분에 사전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제 편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①계엄사령부 구성 자체가 엉성했고 ②계엄 상황에 대한 전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난 데다 ③비상계엄 실행에 필요한 병력을 지나치게 적게 확보하는 데 그쳤다.
합참 공보실장을 지낸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장성급 간부들도 대부분 (계엄 선포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계엄 선언 이후에도 군 주요 지휘부에 제대로 전파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에 계엄사령부가 구성된 뒤 각 지역 단위 계엄사령부가 더 생겨야 함에도 후속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또한 참모장을 비롯해 기획조정실 치안처 작전처 정보처 법무처 동원처 등의 책임자는 임명조차 하지 않았다. 기밀 유지에 치중하다 기본 설계조차 부실했다는 얘기다.
군 내부서도 '정당성 결여' 의식한 듯
국회에 투입된 280여 명(국회 추산)의 계엄군들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자연히 작전 수행 의지가 꺾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방 전문 유튜버 ‘코리아세진’이 공개한 제보에 따르면 계엄령 선포 두 시간 전인 오후 8시 35분쯤부터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제707특수임무단(707특임단) 일부 인원에 작전 출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전파됐지만, 정확한 작전 설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북한과 관련해 상황이 심각해 당장 출동해야 할 수도 있다’거나 ‘(김용현) 국방부 장관께서 이번 주, 다음 주 상황 발생하면 타 여단 신경 안 쓰고 707 부른다고 언급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임철균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계엄 발령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에 앞서 명령이 발동됐으면 집행기관인 군은 움직여야 하는데, 일부는 움직이고 일부는 미적거리고 일부는 움직이지 않았다”며 “이런 점들을 비춰봤을 때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서 군 차원의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장관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일부 병력들만 움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도 “군 내부에서도 정당성이 결여된 계엄 선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를 따르는 것은 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휘관들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철수하던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돌아갔는데,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심적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軍 사기 저하·내부 동요 불 보듯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김명수 의장(해군 대장) 주관 긴급 작전지휘관 회의를 열고 “군 본연의 임무인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겠다”며 뒷수습에 나섰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향후 군 내부 동요와 사기 저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엄 총장은 “군이 수십 년 동안 국민과 함께하는 군으로 성장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했는데 한 방에 다 무너졌다는 점”이라며 “군 지도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확실한 인사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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