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자유·민주'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
권력에 대한 감시 견제 강화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앞으로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그날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퇴근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확인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속보. 어리둥절했다.
초등학생 때 비상계엄을 경험한 적 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도심에 배치된 총 든 군인들, 군복 입은 계엄사령관 담화를 신문 지면 사진과 TV 뉴스를 통해 접했다. 정부의 중대 발표 때마다 왜 군인이 등장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총에 맞아 사망한 직후의 위기 상황이었으니 불가피한 일이라 여겼다. 공공질서, 국민안녕, 처벌과 엄단 같은 단어들이 당시 초등학생의 기억에 새겨진 ‘시대의 키워드’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당시 비상계엄이 무려 1년 넘게 지속(1979년 10월~1981년 1월)됐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무덤덤한 일상이 됐고, 그 일상 속에 광주에서 군인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계엄의 핵심은 군이 시민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민주화 시대인 2024년의 비상계엄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선 “종북 세력 척결”이 나왔고, 국방부가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곧바로 지하철에서 내려 아내, 어머니,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회사로 복귀하면서는 혹시나 서울역에 군이 배치됐는지, 병력 이동은 없는지 살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와중엔 군인들이 사무실에 진입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앞에 개인의 안전과 자유, 일할 권리가 위협받는데,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안전,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했다. 그가 평소 앵무새처럼 강조한 국민, 안전, 자유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날 밤 민낯을 보았다.
군 헬기, 장갑차와 함께 여의도에 나타난 공수부대원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장면은 충격과 공포를 넘어 슬프고, 참담했다. 우리가 그동안 일구고 누렸던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가치가 허망하게 무너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게 뿌리내린 시스템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는지 모르겠다.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민주항쟁, 평화적 정권교체, 2017년 촛불집회 등으로 쌓아 올린 ‘자유와 민주’의 가치도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위협받을 수 있음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어서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당연하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심지어 우리가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을 공격할 수 있음을 보지 않았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결의로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긴박했던 밤이 지나고 우려했던 파국은 피했지만 어떤 이들처럼 비상계엄을 ‘해프닝’으로만 볼 순 없겠다.
거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민주주의는 없었다. 비상계엄에 반대해 여의도로 달려가 군인들을 막아선 시민들이 없었다면 자유가 없는 아침을 맞았을 수도 있다. 당연한 민주주의를 누리려면 권력자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의심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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