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1978년 클리블랜드 부도
미국 오하이오주 최대 도시 클리블랜드시가 1978년 12월 16일 지역 6개 은행에 진 부채 1,400만 달러에 대한 지불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주요 도시로선 첫 채무불이행 사태였다.
클리블랜드시 재정은 전 시장인 공화당 정치인 랠프 퍼크(Ralph Perk)의 임기(1971~77) 때부터 악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경범죄 전과가 있는 인사를 위원장으로 한 시장실 개조 위원회를 꾸려 예산을 초과 집행하기도 했다.
임기 중 시 일반지출은 45%나 늘어났고, 재정 부족분은 차관으로 충당됐다. 77년 시장으로 선출된, 퍼크의 정치적 후원자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도 퍼크의 시정 기조를 유지했다. 채권 평가기관은 78년 시의 신용등급을 강등했고 시는 그해 말 1,550만 달러 단기어음을 갚지 못했다. 그중 1,400만 달러가 은행이 발행한 어음이었다. 시는 79년 말까지 약 4,000만 달러의 대출금을 추가로 갚거나 재융자 받아야 했지만 재정 적자는 늘어가는 상황이었다.
쿠시니치는 소득세 인상 및 세금 담보 추가 대출 등 회생계획을 마련했지만 민간 전력사 전횡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유지하던 시영 발전소를 매각하라는 의회와 채권단의 요구는 거부했다. 부도 이후 클리블랜드시에는 법원과 주정부가 선임한 새 관리인(시장)이 파견됐고 비필수 서비스 공무원 대량 해고와 지자체 연금, 보험 등 혜택이 대폭 억제됐다. 클리블랜드 부도 사태는 이듬해 2월 주민투표를 통해 소득세 1~1.5% 인상안 승인으로 돌파구를 찾은 뒤 향후 3년간 3,620만 달러 재융자 계획을 마련하면서 1980년 11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2022년 기준 미국 75개 주요 도시 중 50곳이 재정 적자를 기록 중이며 뉴욕의 경우 납세자는 미국인 평균 부채 9만6,400달러 외에 1인당 평균 5만6,900달러의 시 부채를 떠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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