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현장 지휘관과 병사가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면
그날 이후 한국 모습은...
"(국회의원)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
우리 우주와 다른 평행 세계 속의 한국.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3일 밤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이 세계의 현장 지휘관들은 공포탄 쏘고 전기 끊고 진입하자는 안에 찬성했다. 병사들도 명령에 충실했다.
공포탄 몇 발에 국회는 아수라장이 됐다. 야간투시경을 쓴 특수부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빠르게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을 비롯, 10여 명의 '체포 명단'에 오른 인물과 100명이 넘는 야당 의원을 끌어냈다. 총부리를 마주한 의원들은 두 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끝까지 저항하던 의원들은 군홧발에 폭행당하며 질질 끌려나갔다. 이들이 향한 곳은 수도방위사령부 지하벙커였다.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성공한 계엄'의 첫날. 거리마다 군인과 경찰이 배치돼 시민들이 모여 집회나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일인 시위하는 시민조차 체포해 구치소는 만원이 됐다. 대학 캠퍼스에도 무장 군인이 배치되고 휴교령이 내려졌다.
경제는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추락했다. 투매로 폭락이 예상되는 주식시장은 임시로 문을 닫았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000원을 넘어 폭등했다.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퍼부었지만 환율 방어는 쉽지 않았다. 주요 기업인들은 빠르게 해외로 도피했다.
대통령은 "파업과 집회 시위가 금지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됐다"며 "주 69시간 연장 근로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와 기업의 신용등급이 뚝 떨어져 금리가 치솟고 자금시장이 얼어붙었다. 수조 원대 해외 투자 유치 프로젝트, 해외 업체에 대한 크고 작은 납품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
주요 언론사엔 언론 보도 통제령에 따라 총 든 군인이 파견됐다. 정부 비판적 보도를 하던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는 TV 송출이 중단됐다. 한 공영방송은 "계엄 성공으로 야당의 패악질이 중단되고 정국이 안정됐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신문사 윤전실(인쇄 공정)에서도 군인이 계엄을 비판하는 기사가 인쇄된 신문을 압수해 배달을 막았다. 그럼에도 인터넷 등을 통해 비판적 기사를 내보낸 언론사는 대표와 기자들 다수가 체포당하고 폐쇄됐다.
인터넷 세상도 암흑이 됐다. 포털사이트는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게 됐다. 구글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등 해외 검색엔진과 소셜미디어에 대한 접속이 차단됐다. 정부 비판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도 서버가 압수되고 접속이 끊겼다. 해외에 서버를 둔 해적 사이트가 생겼지만 발견 즉시 한국에서의 접속이 차단됐다.
답답한 시민들이 용기를 내어 다시금 거리로 나섰다. 노동조합과 대학교 등 거점을 중심으로 지하조직이 결성되고 점차 반대 시위 규모가 커졌다. 그러다 전원 체포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자 결국 대통령은 발포를 명령하고 말았다.
비상계엄이 성공한 평행 세계를 상상해 써 본 가상의 이야기다. 다행히 우리 세계에선 불법 계엄 당일, 현장 지휘관과 병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명령 이행을 거부하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비극을 막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명령하고 지휘한 장본인이 아직도 군 통수권을 계속 쥐고 있다. 당리당략에 몰두한 여당 의원들이 탄핵 표결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하루도 더 버티기 어려운 초현실적인 하루하루를, 이번 토요일엔 반드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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