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폭주해도 '어른들의 축' 측근이 제동
윤 대통령 음모론 경도 우려에도 국민의힘 방관
"싸우겠다"는 尹... 여당 중진은 "곱씹어보자" 호응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이 한마디는 큰 호응을 얻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5년, 4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비정규직 비율은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구조조정 칼날을 피해 하루하루를 견디던 이들에게 이 질문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경제를 살릴 적임자’,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하나마나 한 말을 쏟아내던 유력 정치인들과 대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살림살이 나아졌냐”를 올 대선 시작 첫 메시지로 택했다. 경제는 나아지는데 가계는 힘들어지는 ‘경제 호황의 역설’에 시름하던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수 생활비·돌봄 비용 급등, 주거 빈곤 확대 탓에 빈곤층이 아니지만 생계 곤란을 겪고 있는 ‘앨리스’(ALICE) 계층이 30%에 육박하던 바이든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50년 이래 실업률 최저치(3.9%)를 기록했고, 임금소득 증가율은 8.4%로 높았다. 소득하위 50% 가구 순자산 증가율은 47%로, 상위 1% 증가율의 3배가 넘었다.
□그런 트럼프도 신념에 찬 정책만큼은 위법행위도 마다하지 않고 폭주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건 ‘직을 걸고’ 멈춰 세운 참모와 관료, ‘어른들의 축’ 덕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취임 초 북한을 선제 타격해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려던 트럼프를 막아 세웠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트럼프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연방군을 투입해 진압하려 하자 “권력 남용”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자멸했지만, 몰락을 재촉한 건 여당과 내각이다. 여권 인사 가운데 집권 초부터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을, ‘명박사’ 같은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음모론에 심취한 대통령 문제를 몰랐다고 부인할 이가 있나.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 담화에 "모두 곱씹어보자"며 호응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27년, 다시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살림살이 나아졌냐’는 질문은 사치다. 국민은 이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물어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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