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국무회의를 통해 내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했다. 가뜩이나 위축된 경기에 비상계엄 사태까지 덮쳐 나락으로 추락한 내수를 되살리려는 포석이다. 이번 예산 배정에 따라 정부 각 부처는 내년 전체 세출 예산 574조8,000억 원 중 75%인 431조1,000억 원을 상반기에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부진으로 정부는 이미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상반기 예산배정률을 75%로 잡았으나 극적인 효과를 보진 못했다. 이번엔 추경 조기 편성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무엇보다 민생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며 “내년도 예산안이 새해 첫날부터 즉시 집행될 수 있도록 재정 당국은 예산 배정을 신속히 마무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만큼 일부 품목을 제외한 수출의 둔화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소비와 투자 등 내수 진작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한 대행은 구체적 예산 쓰임새로 서민 생계 부담 완화,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과 함께 첨단산업 육성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상반기 배정 및 집행은 이미 편성된 예산의 집행 속도를 높이자는 것일 뿐 본격 재정정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상계엄 사태 전 정부는 연말 소비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등 전향적인 내수ㆍ소비 진작책을 준비했으나 당장 여야 간 정국 주도권 다툼으로 조세특례제한법 등 필요 세법 개정조차 극히 불확실하게 됐다. 기업 투자와 직결되는 반도체특별법, 인공지능(AI)기본법, 전력망특별법 등 개혁법안들의 처리도 표류 가능성이 높다.
난국 타개를 여야정과 재계가 공감하는 ‘여야정 경제협의체’조차 ‘당정협의’를 우선하려는 여당 탓에 가동이 지연되고 있다. 여당의 이런 행보는 야당 협력 없인 내수 진작 법안 처리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몽니로 비칠 수밖에 없다. 추경 편성 문제도 비슷하다. 여당은 감액 예산을 일방 처리한 야당의 ‘원죄’를 탓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가계부채 부담 경감이든, 다른 직·간접 소비 지원책이든 파격적 대책이 강구되는 모습 자체가 중요해졌다. 일단 여야정이 머리를 맞댈 협의체 가동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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