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남초-마초-파쇼라는 '괴물들'의 정치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서한영교 작가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윤석열, 3일 긴급 담화문 중
괴물(monster)의 라틴어 어원 몬스트럼(Monstrum)은 '생각하게 만들다'라는 뜻의 모노레(monore)라는 어휘에 뿌리를 둔다. 즉 괴물은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을 추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대통령 괴물
대체 어떻게 하면 총을 들고 국회로 갈 생각을 한 걸까? 이 역사적 감각의 출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선거관리위원회를 털어 불법 선거임을 증명하려는 저 무모함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입만 열면 '자유'를 말할 때 도대체 그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 걸까?
간첩, 조폭, 마약으로 구축된 하드보일드한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겁박, 폭거, 농락, 파렴치, 척결, 패악질이라는 언어의 지도가 가리키고 있는 국가의 길은 어디인 걸까? 손바닥에 '王' 자를 새기고 다리를 쩍 벌린 채 앉아 있는 저 '괴물'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남초 괴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전면에 내세워 표 몰이를 하던 윤석열은 당선 전부터 반여성주의에서 출발했다. 툭하면 "페미 X들 찾아 죽이자"는 남초 커뮤니티의 대통령 이준석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었다. 여성혐오 논리를 장착한 이성애-중산층-비장애인-남성 정치인들은 남초의 투정을 진지하게 받아줬다. 집게손가락 손모양이 '남성 혐오'라며 시비를 걸자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연이어 사과하며 관계자들을 징계했다. 해외토픽으로 다룰 만한 남초들의 기막힌 투정은 쇼트커트 페미에게로 이어졌다. 페미니스트 색출 작업에 나서고 "쇼트커트 페미는 좀 맞자"며 처단하는 남초 정치를 증폭시켰다.
안티 페미니즘 대통령과 그 형제들의 메시지를 받아 먹으며, 역사상 유례없이 뻔뻔하고 부끄러움 없는 남초 괴물들은 혐오로 설계한 망상 속에서 증오를 복제하며 폭력을 유통했다. 남초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계엄이 상시로 벌어졌다. 딥페이크 시위? 계엄! 동덕여대 시위? 계엄! 장애인 시위? 계엄! 차별금지법 시위? 계엄! 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평등과 권리를 요구하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혐오의 구호는 "싹 쓸어버리자"는 거였다. '전두환 탱크 따당따당'을 외치며 폭주하는 남성들은 여성혐오로 형제애를 다졌고, 페미니스트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며 전우애를 다지는 남초 괴물들과 동기화를 완료한 대통령은 성평등 예산을 삭감하고, 성폭력에 대응하는 기관들을 폭파시키는 폭군이 됐다.
마초 괴물
마초(macho)는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남성 지배를 잃어가고 있다고 믿으며, 과장된 위기감을 느끼던 라틴 아메리카 농촌 남성들의 폭력적 남성성의 분출을 일컫던 말인 마치스모(machismo)에서 유래했다. 지배적 남성성이라는 가상적 실재(real)의 위기 앞에 마초들은 여성들과 협상하거나, 변혁하거나, 전환하는 방식 대신 폭력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가장 허무주의적인 방식을 택한다. 마초들의 폭력적 성향은 과장된 불안과 과격한 무기력을 바탕으로 밥상을 엎듯 격노하고, 일방적으로 혼자 말하고, 동의 없이 밀어붙이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긴다. 꼼짝할 수 없이 "마비된" 현실에 처해 있다고 상상하며 원한, 냉소, 허무로 똘똘 뭉친 분노가 현실화될 때 남초-마초 괴물로 변태한다.
윤석열이 말하는 망국의 세계관 속 "마비된 국정 운영"에 관한 과격한 무기력은 처단해야 할 "반국가세력"이라는 허구적 적에 의해 지탱된다. 나치를 대변한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정치의 기본을 적대의 정치로 환원하며 "적은 낯설고 이질적인 사람들로서 모두가 가면 속에 우리를 파괴할 치밀한 계획을 숨기고 있는 교활한 자들"로 규정했다. 적을 사악하고 두려운 대상으로 만들어 책임 또한 적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남초-마초 괴물들은 남성과 여성을 분할 통치하는 '아버지의 법'을 수호하는 가부장적 시스템에 뿌리를 뒀다. 이어 '정상화'를 위한 전략으로 아군과 적군, 정상과 비정상, 동질성과 이질성, 국가와 반국가로 분할해 적대의 정치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항구적 위협의 대상인 적을 물리치기 위한 남초-마초 패거리들의 우정 어린 망상은 대개 성공하지 못하고 고립된다. 어이없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파쇼 괴물
"파렴치한 종북" 세력이 "체제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망국의 세계관에서 과학의 자리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믿음뿐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하니 구국의 결단을 내린 "저를 믿어 달라"고 하는 극우 '정치 신학'을 경전으로 삼는다.
이러니, 이해가 안 된다. 믿어야 하니까. 망국의 남초-마초 세계관의 논리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광란의 칼춤"이 난무하는 무협지 서사와 극우 유튜브의 음모론, 무속과 관상학의 서사들이다. 신화와 미신에 가까운 세계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황당한 논리는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의 차원을 가볍게 넘어선다. 망상적 세계관에 둘러싸인 가부장적 남초-마초 괴물은 쿠데타, 즉 '국가의 일격'(Coup D’état)을 통해 망해가는 세상의 질서를 싹 정리해 버리는 남초-마초-파쇼 괴물로 변태한다.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다시 정상화시키겠다"는 형제애로 똘똘 뭉친 파시스트(국가주의자)들은 폭주했다. 남초-마초-파쇼 괴물은 자신의 왕국을 망국으로 망상하며, 존폐위기의 국가를 구해내기 위한 군사력을 동원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쿠데타를 연출하고, 물리력, 충동, 폭력을 총동원해 통치하고자 했다.
특히 계엄사령부 포고령의 1조가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였던 것은 시민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통치와 다스림의 대상, 그저 '신민'(臣民)으로 삼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선량한 국민, 선량한 시민으로도 발음되는 신민은 사회의 주인도 아니고 주권도 없다. 국가 질서에 질문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며 이미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데만 충실한 신민이 되기를 강요한 것이다.
통치의 대상으로서 신민의 덕목은 복종이지만, 정치 주체로서의 시민의 덕목은 권리 요구다. 남초-마초-파쇼 괴물로부터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으로, 선량한 시민으로 호명되지 못한 반국가세력들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반짝이는 빛을 내는 시민들이 광장 가득 깃발을 흔들며 아무리 불러도 터지지 않는 노래를 터지도록 불렀다.
요술봉과 응원봉: 정의의 이름과 사랑의 이름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는 세일러문 요술봉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 달을 대신해서 벌해주겠다"는 정의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마침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엔 보름달이 가득 차올랐다.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광장을 오랫동안 지켜온 페미니스트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청소년들 주변으로 시민들이 반짝반짝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2030 여성들은 전체 참여자 10명 중 3명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초-마초-파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부장적 질서로부터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이들은 망국의 조짐을 읽고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자신의 반짝이는 심장을 꺼내 들었다. 여성혐오 살인과 범죄, 미투 운동, N번방,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로부터 자신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주체로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존재임을 확인한 2030 여성들은 빼앗길 수 없는 '최애'를 꺼내 들었다.
응원봉은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들이 알록달록 빛나는 미래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끌어당겼다. 저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온 사랑의 역사를 다져온 존재들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광장을 이끌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언어와 노래로 무장된 새로운 정치 감각이 활짝 열렸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다시 만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윤석열, 12일 대국민 담화문 중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