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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12·3을 막았다

입력
2024.12.1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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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징조였던 손바닥 ‘王’자, 구둣발
쿠데타 동경하던 검사의 망상에 계엄
광주 역사와 민주 시민이 나라 살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회가 열린 2021년 10월 '왕(王)' 자가 그려진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있는 장면. MBN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회가 열린 2021년 10월 '왕(王)' 자가 그려진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있는 장면. MBN 유튜브 캡처

징조는 있었다. 역사적 사건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왼쪽 손바닥엔 왕(王) 자가 새겨져 있었다. 21세기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가 미신을 믿는 듯한 행동을 전 국민 앞에서 버젓이 한다는 건 납득이 안 됐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조선의 왕이 되려 하는 건 아닐지 불길한 예감도 엄습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설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그때 간파했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왕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자 괴물이 된 국회로부터 ‘나라’를 지킬 방법이 그에겐 군대와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구둣발도 신호였다. 2022년 2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무궁화호 열차에서 구두를 신은 채 앞좌석 벨벳 천 위에 발을 뻗는 장면은 암시였다. 국민을 섬겨야 할 이가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마치 짓밟으려 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군사 독재 시절 폭압에 대한 트라우마가 큰 한국 사회에서 구둣발은 군홧발도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냥 넘어갔다.

심지어 쿠데타를 동경하는 발언을 한 사실을 간과한 건 가장 아픈 대목이다. 검찰총장이던 2020년 3월 “만일 육사에 갔다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지난해 10월 고발사주 의혹 재판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를 심각하게 여긴 이는 거의 없었다. 윤 대통령은 결국 4년 후 친위 쿠데타나 다름없는 12·3 불법 계엄을 감행했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12·3 계엄은 느닷없고 시대착오인 데다가 너무 황당해 초현실로 느껴졌다. 그러나 사시 9수 끝에 검사가 돼 평생 갑으로 과거에 갇혀 살던 윤 대통령 입장에선 오래 준비하고 꿈꿔온 일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거사였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검찰의 역사를 ‘빨갱이 색출의 역사’로 생각하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광란의 칼춤’을 추는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는 방법은 계엄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상식이 있는 이에겐 터무니없지만 그에겐 북한의 선관위 해킹과 부정 선거 의혹도 하루빨리 밝혀야 할 중대 사안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고도의 통치 행위인 계엄을 선포한 것’인데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이유다.

그나마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가 2시간여 만에 국회에서 계엄해제요구안이 가결되며 무위로 끝난 건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재빠르게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아서 가능한 기적이었다. 만약 시민들이 조금만 늦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무장 계엄군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건 역사가 무한한 용기를 불어넣어줬기 때문이다. 국회 상공의 군 헬기를 보며 많은 이는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렸다. 당시 전남도청처럼 국회를 외롭게 놔둘 순 없다는 공감대가 컸다. 다시 역사에 부끄러울 수도 없었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공도 큰 힘이 됐다. 국회 현장뿐 아니라 이날 수많은 잠재적 시민군은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를 한 채 밤을 새웠다. 결국 그간의 민주화 역사가 절체절명의 순간 나라를 살린 셈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이 날 때까진 상당 기간 불확실성과 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24년은 앞으로 이 땅에선 그 누구도 쿠데타나 내란을 꿈꿀 수 없게 만든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 인간 됨됨이도 세심하게 살펴 신중히 뽑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겨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 누구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순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4일 새벽 계엄군이 탄 헬기가 서울 여의도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4일 새벽 계엄군이 탄 헬기가 서울 여의도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 뉴스1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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