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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만큼 첫 책은 순수덩어리"... 초판만 6만 권 모았다

입력
2024.12.20 04:30
수정
2024.12.21 11:5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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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교수의 '처음 책방'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30년 넘게 세상에 처음 나온 책을 수집해온 김기태 세명대 교수가 자신의 초판본·창간호 컬렉션 보물창고인 경기 이천시 '처음 책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30년 넘게 세상에 처음 나온 책을 수집해온 김기태 세명대 교수가 자신의 초판본·창간호 컬렉션 보물창고인 경기 이천시 '처음 책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첫 책은 순수덩어리예요. 거기 매력이 있죠. 사랑도 첫사랑이 최고잖아요. 첫사랑만큼 순수한 사랑이 있나요?"

책의 초판본, 그중에서도 1쇄본만 30년 넘게 지독히 모아온 김기태(60)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의 항변이다. 그는 1판 1쇄만큼이나 정기간행물 중 첫 번째로 발행된 창간호 수집에도 열 올렸다. 왜 그토록 '처음'에 집착할까. 6만5,000권이 훌쩍 넘는 그의 초판본·창간호 컬렉션 보물창고를 찾았다. 지난달 22일 경기 이천시에 문 연, 이름하여 '처음 책방'이다.

"초판본은 그걸 만든 사람들의 열정의 집합체예요. 초판본을 대충 만드는 사람은 없어요. '망할 거다'라는 생각으로 만드는 사람도 없죠. 초판본은 기대와 희망의 산물입니다. 창간호도 마찬가지예요. 첫 번째 책인데 얼마나 노심초사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김 교수의 초판본·창간호 예찬은 이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열정을 쏟아도 초판에는 항상 오류가 있어요. 2쇄, 3쇄 가면 싹 사라지죠. 그게 매력이고요. 초판본·창간호는 오류까지도 떳떳하게 실리는 순수덩어리거든요."

"아내 모르게 모은 책"… 6만5,000권이 넘었다

'첫 번째 책'을 처음 만난 건 1980년대 후반 김 교수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때다. 여느 편집자처럼 그의 최대 고민은 '내가 만든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만든 책도 헌책방에 나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틈나면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기웃거렸다. 그때 처음 월간 '뿌리 깊은 나무(1976~1980)' 창간호를 만났다. 농부가 쌀을 한 줌 움켜쥔 표지 사진만 돌아다녔던 전설의 잡지. "존재는 알지만 본 적은 없던 책"을 그는 당시 30만 원 남짓 월급에서 1만 원을 헐어 샀다. 자취방에 쌓여 가는 책을 보면 그는 그저 기분이 좋았단다.

경기 이천시로 장소를 옮겨 지난달 재개관한 '처음 책방'에는 김기태 교수가 수집한 초판본·창간호 6만6,0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경기 이천시로 장소를 옮겨 지난달 재개관한 '처음 책방'에는 김기태 교수가 수집한 초판본·창간호 6만6,0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초판본·창간호 수집벽은 곧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1990년대 중반 대학 강사로 이른바 '보따리 장사'를 다니게 되면서다.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다 우연히 들른 서대전역 인근 헌책방에서 창비시선 초판 1쇄본을 사기 시작하면서부터 광주 송정역 인근, 대구 대학가, 인천 배다리 골목, 부산 보수동 골목 등 김 교수의 헌책방 전국 순례가 시작됐다.

그렇게 30여 년간 모은 책은 시집·소설 등 단행본의 초판본 5만여 종, 신문·잡지·기관지·사보 등 정기간행물 창간호 1만5,000여 종이다. 이후에는 세지 않아 그조차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번듯한 서재가 없어 책들 역시 만학도 제자의 사무실, 동료 교수의 연구실 등 전국 곳곳에 더부살이로 얹혀 있었다. "저도 그동안 모은 책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책 모으고 있는 건 아내도 몰랐으니까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꾸준함을 이길 수 없다는 격언은 이럴 때 쓰는 말 같지 않나요. 하하."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김 교수는 책을 세상에 꺼내놓기로 했다. 2001년부터 교편을 잡고 있는 충북 제천 세명대 인근에 세상에 처음 나온 책을 모아 2022년 '처음 책방'을 처음 열었다. 책방이지만 판매하지 않고 보관하는 창고에 가까웠다. 올해는 판매까지 용기를 냈다. 5톤 트럭 10대 분량의 책을 경기 이천으로 옮겨 새로 문을 연 책방에서는 김 교수가 애지중지하는 초판본 일부가 판매된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책을 만드는 이들이 열정을 쏟아도 오류가 발견되는 초판본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천=정다빈 기자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책을 만드는 이들이 열정을 쏟아도 오류가 발견되는 초판본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천=정다빈 기자


자식 같은 '희귀본'… "더 귀하게 여길 사람에게 가야"

팔려고 내놨지만 정작 팔릴까 봐 노심초사다. 가장 아끼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손사래쳤다. "그런 질문이 제일 곤란하다니까요. 여기 다 내 손으로 골라놓은 건데 어떤 책인들 안 아깝겠어요. 얘네들 지금 다 듣고 있어요." 그는 책이 팔릴 때마다 "자식 하나 잃어버린 기분"이라고 했다.

떠난 자식의 행복을 비는 부모의 마음일까. "시원섭섭하지만 더 귀하게 여길 사람에게 가는 게 맞죠. 책들 걱정은 안 해요. 한 권당 최소 한 명의 눈 밝은 독자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러면 제 주인 찾아가는 거니까 걱정 안 해요."

서가에 꽂혀 있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은 책들은 모두 비닐 포장돼 있었다. "책이 주인공인데 온전히 보존되는 게 중요해서요. 그 위에 바로 가격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요." 김 교수가 한 권 한 권 손수 비닐로 쌌다. 다만 얼마든지 비닐을 뜯고 읽어도 된다고 했다. 서가 사이에는 오래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을 놓았다.

'처음 책방'에는 누구나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처음 책방'에는 누구나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을 표방하는 만큼 '처음 책방'에는 귀한 책들이 많다. 1961년 발행된 최인훈의 '광장' 초판본은 그가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이다. 다만 표지 재킷이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양장본인데 재킷이 없으면 참 쓸쓸하거든요. 인터넷상 올라온 '광장'의 재킷 이미지를 컬러 출력해서 '가짜옷'이라도 씌워 놨죠. 나중에 어렵사리 제옷을 구해 입혀줄 수 있었어요."

의외로 경매를 통해 싼값에 손에 넣은 책도 있었다. 신경림의 '농무' 초판본이 그랬다. 여전히 너무 비싸서 곁눈질만 하는 책이 더 많다. '정지용시집' 초판본은 아직도 못 구했다. "앞으로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게 그의 말. 서정주의 '화사집'은 복각본으로 소장 중이다. 200부 한정판으로 나왔다던 초판은 구하지 못했다. 아깝게 놓친 책도 있다. 김수영의 첫 개인 시집인 '달나라의 장난'.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세게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놓쳤거든요. 지금도 꿈에 나타나요."

아직도 시 100편 외는 시인 "고전 읽어라"

책방지기가 된 김 교수는 "그동안 출판 평론하느라 읽기 싫은 책도 읽어야 했다"면서 "이젠 진짜 읽고 싶은 책만 읽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한 달에 평균 5권 정도 책을 읽는다. 시간과 상황에 맞게 여러 권을 겹쳐서 읽는 편이다. "이 책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갔을 때 먼저 읽은 책을 배제하는 시간이 그 책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그러면 오히려 의미 있는 독서가 되는 것 같더군요."

김기태 교수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사임한다는 내용의 1960년 4월 26일자 한국일보 호외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김기태 교수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사임한다는 내용의 1960년 4월 26일자 한국일보 호외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천=정다빈 기자

인천 강화군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어린 시절 '15소년 표류기', '파브르 곤충기', '로빈슨 크루소' 등 책 속 세상에 빠져 살았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고,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고물상에 쌓여있는 헌책을 가져다 읽었다. 법대 가길 바랐던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국문과에 입학했다. 부친은 김 교수가 군 제대를 하자마자 아들과 화해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때 김 교수는 '임종'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어디에도 발표되지 못했던 '임종'을 비롯해 김 교수가 쓴 시 5편은 계간 '시현실'의 2024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청년 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뒤늦게 아들의 등단을 도운 셈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고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꼭 읽으라는 게 그의 당부다. 그는 최근 시인 정현종의 에세이집 '빛-언어 깃-언어'와 김용만의 시 '폭설'에 푹 빠져 있다. "요새 아주 책 읽는 재미가 난다"고 할 정도. 지금도 좋은 시는 100편 넘게 왼다는 그가 '폭설'을 읊었다. "눈 온다/ 정말 시처럼 온다// 뭘 빼고/ 더 보탤 것도 없다// 넌 쓰고/ 나는 전율한다// 시는 그런 것이다."

이천=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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