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우즈베크인 용의자로 체포... "우크라에 포섭"
구소련 KGB 계승 '우크라 SBU vs 러 FSB' 정보전
"다가올 일 정보 수집 능력 부족"... FSB 비판 직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러시아군 장성 폭사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29세 우즈베키스탄 국적 남성이 체포됐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배후설'도 점점 굳어지고 있다. 2년 10개월간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정보기관 간 '그림자 전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전날 수제 폭발물을 이용해 이고르 키릴로프 러시아 화생방전 방어사령관, 그의 부관 등 2명을 살해한 용의자를 붙잡아 구금했다고 밝혔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에다 1995년생인 이 남성은 "우크라이나 특수 당국에 포섭됐고, 미화 10만 달러(약 1억4,500만 원)와 유럽 여권을 대가로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는 게 FSB의 설명이다. 키릴로프 사령관은 러시아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모스크바에서 폭발 사건 등으로 암살된 러시아군 관리 중 최고위급이다.
러시아 측이 언급한 '우크라이나 특수 당국'은 곧 SBU라는 게 정설이다. 주요 외신들이 이같이 전하는 것은 물론, SBU조차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를 계승한 우크라이나의 SBU가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그림자 전쟁'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그림자 전쟁은 전면전 대신 중요 시설·인물 공격이나 사이버 공격 등 방식으로 수행되는 간접적 군사 행동을 뜻한다.
FT에 따르면 SBU는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 KGB 조직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 '직계 후신'이다. 3만 명 이상 직원과 그 이상의 비공식 요원을 두고 있다. 신문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요원 수(3만5,000명)와 거의 비슷하다. 영국 MI5의 7배 이상, 이스라엘 모사드의 4배 이상"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정보기관인 국방부 정보총국(HUR)과 달리 원래는 국내 업무를 담당했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로는 대(對)러시아 공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HUR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러시아와의 전쟁 개시 이후 끊이지 않는 '러시아 관리 암살 사건'의 배후는 대부분 SBU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 41여단 책임자 발레리 트란코프스키 참모장이 차량 폭발로 숨진 사건도 마찬가지다. 바실 말류크 SBU 국장은 올해 초 FT에 "SBU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전쟁 중 적의 특수 기관에 대항하는 것"이라며 "침략자의 모든 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FSB 역시 KGB를 계승한 기관이다. 다만 이 사건으로 "SBU와 HUR의 공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러시아 군사전문 언론인 유리 코테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의 첩보 기관은 러시아 영토, 특히 수도와 대도시에서 아무 제재 없이 행동하고 있다. 이것은 대혼란"이라고 쓰기도 했다. 안드레이 솔다토프 유럽정책분석센터 수석연구원은 FT에 "FSB는 이미 일어난 일을 조사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다가올 일'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며 "훌륭한 정보 기관은 신뢰를 토대로 정보 공유를 잘 해야 하는데, 이는 러시아 기관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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