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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에 빠진 인물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위험성

입력
2024.12.25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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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공
폴 공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18> 트럼프 백악관의 '기독교 국가주의'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피트 헤그세스(오른쪽) 국방장관 지명자가 14일 미국 육해군 축구경기 대회에 참석, 미국 국가에 예의를 표하고 있다. 가운데는 J.D밴스 부통령 당선자.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피트 헤그세스(오른쪽) 국방장관 지명자가 14일 미국 육해군 축구경기 대회에 참석, 미국 국가에 예의를 표하고 있다. 가운데는 J.D밴스 부통령 당선자. 로이터 연합뉴스


거칠어지는 복음주의자 입김
위험한 개신교 일방주의 사고
한국 개신교인들은 다른 행태

미국 워싱턴DC에서는 매년 10월 첫 월요일 ‘붉은 미사’(Red Mass)가 열린다. 대법원 이하 미국 법원의 새로운 연도가 시작되는 이 날을 맞아, 사법부 종사자들에 대한 신의 은총을 간구하는 행사다. 그런데 미사가 열리는 세인트 매튜 성당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렸던 곳이다.

장례식이 있던 1963년과 현재를 비교하면 미국 종교 지형은 크게 변했다. 케네디가 1960년 미국의 첫 가톨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는 미국의 주류세력인 개신교인들에게서 깊은 의심을 받았다. 케네디의 1,000일 간의 임기 중 가장 큰 이목을 끌었던 사건도 1963년 7월 바티칸에서의 교황 바오로 6세와의 면담이었다. 무릎 꿇고 교황 반지에 입을 맞추는 가톨릭 전통 대신, 케네디는 교황과 악수를 했다. 당시 미국 개신교인들은 바티칸이 미국의 첫 가톨릭 신자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당시 인구의 69%가 개신교이고, 가톨릭은 24%에 불과했기 때문에 케네디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60년 세월이 흐르면서 가톨릭 비중은 그 때와 비슷한 22%를 유지하는 반면, 개신교 비율은 2023년 33%로 감소했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개신교의 정치 관여라는 측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피트 헤그세스를 국방장관에 지명한 것이 논란을 빚고 있다. 헤그세스는 예루살렘 십자가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라틴어 문구의 문신을 새겨 넣은 인물인데, 해당 문신 모두 십자군 전쟁의 상징이다. 과거 발언과 2020년 그가 출판한 책은 헤그세스가 ‘기독교 국가주의’(Christian Nationalism)를 신봉하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기독교 애국주의’로도 번역되는 이 사조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세워졌다는 믿음과 미국 법률은 기독교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는 개신교도 비율이 감소하면서 '기독교 국가주의'를 믿는 이들은 더 과격하고 복음주의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2023년 브루킹스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0% 가량이 이런 성향을 갖고 있다.

물론 헤그세스는 혼자가 아니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파울라 화이트 목사, 백악관 예산국장에 지명된 러스 보우트 모두 기독교 민족주의를 믿는다. 이들은 미국을 성경에 따라 다스리려는 '新(신) 사도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을 펼치며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공화당 정치인들과 연대하고 있다. '신사도 개혁운동' 지도자들은 2016년 첫 대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트럼프를 지지했고, 2020년 그가 대선에서 패했을 때는 의사당 점거 폭동에도 참가했다. 볼티모어에 본부를 둔 이슬람-기독교-유대연구소의 매튜 테일러에 따르면, 이 운동의 가장 저명한 지도자 중 한 명은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한국계 미국인 체 안(Ché Ahn·안재호) 목사다.

기독교 국가주의는 미국 밖에서도 관찰된다. 브라질이 그렇다. 실제로 브라질의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부상은 트럼프와 자주 비교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인구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개신교도 만만치 않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 후, 전쟁에 패한 남부 사람들이 브라질로 당시 여전히 노예제가 지속되던 브라질로 대거 피난하면서 개신교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개신교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2020년 가톨릭 인구는 51%, 복음주의 개신교는 31%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가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에 앞장 선 이도 마틴 루터 킹도 침례교 목사였다. 문제는 헤그세스가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는 미네소타주 방위군으로 이라크와 아프간에 모두 파병됐으며, 심지어 군 복무 중 11개월은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으로 악명 높은) 과타나모 수용소에서 근무했다. 잘못된 기독교 신앙이 이슬람과 유대인을 학살한 역사적 오점으로 평가되는 십자군 전쟁을 헤그세스는 다르게 이해한다. 대중매체와 출간된 책에 따르면 그는 '성스러운 전쟁'으로 믿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이끄는 사람에게는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흥미롭게도 2019년 미 국방부 데이터에 따르면 미군의 70%가 기독교인이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트럼프와 자신을 비교했지만,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첫 임기 중 3명의 대법관을 교체, 1973년 이뤄진 낙태 합법화한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헤그세스의 국방장관 임명에 미국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보은의 뜻이 담겼는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최근 구속된 한국의 국방장관이 부정선거 의혹을 믿었던 걸 감안하면 도그마에 빠진 인물의 권력 장악은 국가와 민주주의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폴 공 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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