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 총평
2024 올해의 책 5개 부문 50권 중
12월 3일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의 제3항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였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책의 본적지, 책의 본령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책은 불온하고 위험한 것, 그래서 부당한 권력이 검열해야 할 인화물질이었다. 거기에 책의 본래 자리가 있다. 202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50권의 책, 그리고 그중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5권의 도서는 책의 그 폭발력을 증거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저 '위험한 책'들이 우리의 내면과 우리 공동체를 뜨겁게 뒤흔들기를,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함께 세찬 목소리로 우리의 연약한 상식과 거짓된 합의를 고발하기를 기대한다. 책은 단순히 텍스트 파일의 출력물이 아니다. 책은 총알이고 도끼이며 깃발이고 폭탄이다. 이토록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낸 모든 분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학술 부문에서는 서보경의 '휘말린 날들'이 큰 박수를 받으며 올해 최고의 학술서로 선정됐다. 엄밀함과 자유로움, 학문적 거리와 인격적인 몰두, 견고한 과학과 매력적 문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감염이라는 우리 시대 가장 징후적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우리 모두 저자의 역작에 행복하게 "휘말렸다"는 고백을 여기에 적어둔다.
교양 부문에는 박혁의 '헌법의 순간'이 선정됐다. 헌법 초안이 제헌국회에 제출된 1948년 6월 23일부터 헌법안이 통과된 7월 12일까지 그 20일간의 논쟁과 고민을 담았다. 국가공동체의 향배에 대한 당시 논쟁을 생생하게 되살린 이 책은 헌법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시 숙고되어야 하는 이 시대에 뜨거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청소년 분야에는 김동수의 그림책 '오늘의 할 일'이 최종 수상작의 영예를 차지했다. 자연의 힘에 대한 상상의 시선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 위태로운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행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기발하고 심오한 경지를 펼치면서도 친근하고도 아름답다.
번역 부문에는 수지 시히(노승영 옮김)의 '세상 모든 것의 물질'이 선정됐다. 실험물리학의 놀라운 역사를 가능하게 한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생생하고도 정확한 우리말로 살려냈다. 이 분야에서 번역자가 보여준 오랜 기간의 견실한 성취 덕분에 더욱 뜨거운 박수로 이번 수상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두고 싶다.
편집 부문의 최고 영예는 사계절출판사의 '민주인권 그림책 시리즈'가 받았다. 13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8권으로 엮어낸 이 기획은,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목소리가 모여 겸손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표정을 지켜보는 데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오롯이 하나의 주제로 향하는 이 시리즈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출판기획물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강력하고도 모범적인 응답이다.
심사위원단은 지난 7일에 학술, 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 다섯 분야에서 분야별로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후 최종 수상작을 가려내야 하는 과제를 위해서 오랫동안 숙고와 토론을 거듭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좋은 책을 쓰고 만든 저자, 번역자, 편집자 덕분에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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