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 수상작
노승영, '세상 모든 것의 물질'
편집자주
한국출판문화상의 6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노승영(51) 번역가는 "번역에도 정답이 있다"는 태도로 글을 옮긴다. 그의 번역서 목록에 번역이 까다로운 과학 분야 책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작 '세상 모든 것의 물질'도 입자물리학의 역사를 다룬 과학서다. 그는 "과학자 출신 저술가의 글쓰기는 이래야 한다라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책"이라며 "수식으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책"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출판문화상의 번역 부문 심사에서는 번역서의 정확성과 유려함도 살피지만, 번역자로서의 그간 공로도 고려한다. 노 번역가는 2007년 이후 107권을 번역한 베테랑이다. 그중 약 40%를 과학서가 차지한다. 그는 "흑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과 거짓을 나눌 수 있는 영역이 과학"이라며 "과학책은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 정답을 맞춰보기가 더 수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답을 찾는 과정에선 실수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는 실수를 공개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출간 뒤 발견된 번역 오류는 정오표를 만들어 자신의 홈페이지(socoop.net)에 공지한다. 책도 상품이라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세상 모든 것의 물질'도 정오표가 올라와 있다.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가졌던 박용섭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바로잡아준 오류들이다.
번역은 그에게 한국어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번역을 하다 보면, 영어에 있는 표현이 한국어엔 없을 때가 있다. 언어는 생각을 제약한다. 그래서 번역은 특정 언어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번역은 우리의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국어의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이라며 "독자가 원서를 참고했다는 말은 결코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번역서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국어 자산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번역할 때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는 음차를 가급적 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출간된 헝가리 소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번역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영어의 관계대명사로 길게 이어지는 만연체를 한국어 연결어미를 활용해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영어의 관계대명사는 한국어의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져준 작품"이라며 "한국어로도 길디 긴 문장을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인공지능 시대, 번역가의 역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번역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인간만이 번역할 수 있는 10%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이 어떤 글이든 번역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평균적인 글을 평균적으로 번역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평균에 속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번역가 이희재 선생님 말처럼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길을 내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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