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 사태' 후 시민들 덮친 트라우마
국회 지킨 보좌진·현장 주민 "불안, 불면 일상"
"정치·경제 혼란 계속 '서울의 밤' 떠오르게 해"
“계엄에도 후유증이 있나 봐요.”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미림(29)씨는 경찰 버스가 보이면 식은땀이 나 언젠가부터 길을 멀리 돌아간다고 29일 털어놨다. 휴대폰으로 밤새 지켜본 '12·3 불법계엄 사태' 당일 여의도 국회 앞과 용산 대통령실 앞에 깔려있던 수천 명의 경찰이 떠올라서다. 그날 이후부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종일 속보를 확인하느라 불면증까지 걸렸다. 견디다 못해 찾은 병원에서 '계엄으로 인한 충격으로 보인다'는 진단과 함께 약물을 처방받았다.
계엄이 남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이제야 실감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계엄과 탄핵소추안 투표불성립, 가결 등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갈 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심리적 고통이 뒤늦게 훨씬 더 크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계엄의 공포를 직접 겪은 경험자들의 후유증은 더 크다. 계엄 선포 직후 다른 보좌진들과 함께 국회 담을 넘고, 계엄군과 몸싸움을 벌였던 심모(39) 비서관은 요즘 헬리콥터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고 출근길 국회 경비대만 봐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는 "계엄 당시엔 '일단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다음 주부터 이런 증상들이 나타났다"고 털어놨다. 국회 안엔 심 비서관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의원실이 종합병원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고 씁쓸해했다. 대통령 전용기 등이 오고 가는 서울공항 근처에 거주하는 서모(55)씨 역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직후에도 공항을 오가는 비행기 소리에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닐까 걱정돼 한숨도 못 잤다"며 "요즘에도 종종 (비행기) 환청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간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부산에 거주하는 박모(27)씨는 "대통령이 처벌은커녕 제대로 수사도 받지 않는 모습을 보니 진짜 2차 계엄이 터지는 건 아닐지 걱정돼 잠을 설치기 일쑤다"라고 했다. 지난 22일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농민들과 함께 밤샘 집회를 벌인 취업준비생 김모(33)씨도 "정부, 경찰과 군에 대한 신뢰가 한번 무너지니 회복이 잘 안 된다"며 "계엄 여파로 경제까지 타격을 입어 취업도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우울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트라우마 '정상'... 일상 회복 놓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이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포고령 선포로 일시적이었지만 일상이 마비되고 치안 체계가 무너진 경험은 앞서 벌어졌던 대형 사회적 참사와 마찬가지로 시민들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만큼 트라우마로 언제든 발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계엄 주동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탄핵 심판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등의 상황이 '서울의 밤'을 계속 상기시킨단 분석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적 불안이나 환율 폭증 등 생활에 지장이 생기니 계엄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사건 당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며 "낙관적인 자세로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도 "계엄은 전 세대가 공유한 집단 트라우마로 목격 사실 자체로 위협과 공포가 될 수 있다"며 "권역 트라우마 센터에서도 계엄과 관련된 심리 지원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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