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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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 했던 2024년을 보내는 일본 정치권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24일 자민당, 공명당, 국민민주당 간 '3당 협의'가 무산되면서 세제개편 논의가 재정정책을 넘어선 복잡한 정치적 계산과 전략이 얽힌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103만 엔의 벽'이 일본 정치의 상징적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민주당이 주장하는 기초공제액 178만 엔 인상안과 여당이 제안한 123만 엔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은 채, 협상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이번 논쟁의 핵심은 세제 개편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이다.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자민·공명 연합은 215석을 얻는 데 그쳐 단독 과반에 실패하여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였지만, 28석을 확보하며 약진한 국민민주당은 캐스팅보트를 쥔 채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민민주당은 부분 연정의 핵심 조건으로 소득세 부과 기준을 103만 엔에서 178만 엔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해 왔다.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측은 178만 엔 인상안이 초래할 약 7조 엔에서 8조 엔의 세수 감소와 재정 부담을 강조하며, 123만 엔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결렬은 수치상의 차이에 기인한 듯 보이지만, 이면에는 정치적 셈법이 작동하고 있다. 국민민주당은 목표치를 유지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자민당 안에서는 10·27 중의원 선거에서 38석을 확보한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파트너로 고려하는 듯 한 움직임도 보인다. 정치 저널리스트인 아오야마 카즈히로(青山 和弘)는 "자민당이 국민민주당을 배제하고 유신회와 협력할 경우, 국민민주당은 정치적 존재감을 상실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민주당의 당 대표(현재 직무정지 처분 중)인 다마키 유이치로(玉木 雄一郎)는 연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당의 강경 입장을 드러내는 동시에, 협상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다마키 대표의 행보는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마키 대표가 24일 방송에서 "150만 엔 이상으로 가지는 않지 않겠나"라고 언급한 바 있어 타협안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민주당 내부에서도 강경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란 평가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시기적으로 다소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타협안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전략적 위치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마키 대표의 조급함을 문제로 지적하는 정계 인사들도 있다.
결국 이번 '103만 엔의 벽' 논쟁은 일본 정치에서 여소야대 구조와 정치적 협상의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치 상황이 계속 되어 내년도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 예산 집행에 차질을 빚어 경제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금융시장과 국민들 사이에 퍼질 우려도 있다. 103만 엔을 둘러싼 논쟁은 내년 초 이시바 내각에 대한 지지율 여하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논쟁의 결과는 일본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와 일본 사회의 경제적 구조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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