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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상관 않겠다'는 졸혼 합의서, '외도 면죄부' 될 수 없다

입력
2025.01.06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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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 <13> 졸혼과 상간소송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졸혼, 법 규정 및 사회 기준 없어
다만, 졸혼 결정 과정이 핵심 쟁점
유책 배우자의 졸혼 요청은 불가

Q: 50세 여성 A다. 15년의 결혼생활 후, 결국 부부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다만, 아이들이 아직 미성년자라, 바로 이혼하기보다 2~3년 ‘졸혼’ 상태로 지내다가 그 후 이혼할지 또는 졸혼을 유지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졸혼 합의서’도 작성했다. △서로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부모 상(喪)을 당했을 때는 서로 참석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남편은 여성 B씨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남편이 ‘이혼’으로 법률 관계를 확정하기 전에 다른 여성을 만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B씨에 대해 상간소송(부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을 제기했다. 승소할 수 있을까?

A: 2019년 우리나라 50~60대 중년 10명 중 4명 이상(41.2%)이 황혼이혼이나 졸혼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필자 역시 현장에서 졸혼의 급격한 증가세를 실제로 체감하고 있다. 졸혼 관련 자문, 혹은 소송 의뢰가 급증할뿐더러, 법원에서도 재판 대기를 하고 있노라면 앞뒤 진행 사건 중 졸혼 관련 소송이 적지 않다.

A씨는 남편과 졸혼했고 남편은 졸혼 이후 B씨를 만났다. 눈여겨볼 점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겠다’는 졸혼 합의서를 작성했고, 그 후에 남편이 새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를 ‘혼인 관계 중의 부정행위’로 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먼저 법이 졸혼을 인정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법에는 ‘졸혼’이라는 제도가 없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졸혼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 공통의 기준이 없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졸혼 후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은 ‘혼인 관계 중 부정행위’다.

위 상담 사례에선 A씨 부부가 졸혼합의서까지 쓴 경위가 매우 중요하다.

먼저, 합의서 작성에 대한 첫 번째 가정이다. A씨 남편이 반복적으로 외도를 하면서 이혼을 요구했고 A씨는 마지못해 “이혼 대신 졸혼하자”고 제안했을 경우다. 남편 요구에 못 이겨 “새로운 이성을 만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A씨가 지속적으로 “졸혼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요청했다면 어떨까?

이 경우 법원은 A씨가 혼인 관계 해소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졸혼합의서에 ‘새 이성 허용’의 내용이 담겼더라도, ‘혼인 관계 중의 부정행위’로 봐 B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법원이 졸혼합의 과정을 ‘법의 기준으로 볼 때 혼인 관계가 유지된 정도로 볼 수 없는 경우’라 판단했다면 “사실상 혼인 관계가 파탄 난 것”으로 보고, 남편은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두 번째 가정이다. A씨가 합의를 하면서 진정한 의사로 혼인 관계 자체를 종료할 의사가 있었고, 그래서 ‘서로 이성을 만나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했을 경우다. 그래서 A씨는 배우자에게 “나도 새 남성을 만날 테니, 당신도 빨리 새로운 여성을 만나라”는 등 서로의 이성 관계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경우다. 법원은 이들 부부가 쌍방 혼인 유지 의사가 없었다고 보고, “B는 혼인 파탄 후 이성 교제를 한 것”으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법은 ‘졸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은 아무리 부부 쌍방 또는 일방의 요청으로 졸혼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졸혼 과정이나 내용 등을 다각도로 세심하게 살핀다. 실제로 혼인 관계가 파탄 났는지, 부부 양쪽이 혼인 관계 해소에 대한 진지한 의사가 있는지 살핀다는 뜻이다. 특히 졸혼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사람이 유책 배우자인지 여부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에서 정하는 ‘이혼이 성립할 수 있는 경우인지’를 살펴 판단하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가족 관계를 최대한 보호하기를 원하는 법원의 의지가 투영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또는 졸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가족관계를 형성·유지·해소하려는 부부 쌍방의 의사 합치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새해에도 독자들의 가정이 평안하고 다복하기를, 아울러 가정폭력 등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독자들이 따뜻하게 보호받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승혜 법무법인 에셀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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