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가 손만 대면 식물이 시든다고요? "드라이 가든부터 도전해요"

입력
2025.01.08 04:30
19면
0 0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가뭄 취약 지역에서 발전한 '건식 조경'
물 절약은 물론 탄소 배출 저감에 효과
작은 정원은 국가 정원 도시로도 발전
"드라이 가든 구경하며 취향 파악부터"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가뭄에 강한 식물들 위주로 건식 조경 정원을 구성한 박혜진(44)씨의 정원 모습. 박씨는 "건식 조경이라고 해서 꼭 선인장이나 다육식물만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어요. 박씨 제공

가뭄에 강한 식물들 위주로 건식 조경 정원을 구성한 박혜진(44)씨의 정원 모습. 박씨는 "건식 조경이라고 해서 꼭 선인장이나 다육식물만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어요. 박씨 제공

"너희 집에는 왜 식물이 하나도 없어?"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그만 콤플렉스를 들켜 버렸어요. 손대기만 하면 식물을 시들게 하는 전 그동안 '식집사'(식물을 모시는 집사)는 엄두도 못 냈답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대기 중에 산소를 배출하는 식물이 기후위기의 '슈퍼파워'라는건 익히 알지만요. (관련기사: 우리 집 베란다도 기후위기 해결사? 탄소정원의 모든 것) 그럼에도 식물 키우기는 먼일처럼 느껴졌죠.

이대로 식물 키우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다행히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건식 조경이라는 대안이 있어요. 건식 조경은 관개(식물을 키울 때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일)의 필요성을 줄이거나 없애는 형태의 식물 가꾸기로, 가뭄에 취약한 지역을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에요. 선인장류처럼 물 관리가 거의 필요 없는 식물을 키우고 잔디 대신 모래와 자갈 등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물 절약 조경이라고도 하고요. 정원 문화를 공유하는 시민사회에선 드라이 가든이라는 비교적 쉬운 용어로 불립니다.

건식 조경은 탄소배출 저감에 적합한 기후행동이에요. 남수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진흥실장은 "일반 조경 방식의 정원은 물을 주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등 에너지를 상시로 소모해 탄소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어요. 그러면서도 "저관리 경량형(관수, 시비, 예초 등 지속적인 관리 없이도 식생층이 유지되는 시스템)인 건식 조경은 물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물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까지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못나고 삭막한 조경? 아기자기하고 편리하기까지

선인장류 11가지를 키우는 '식집사'(식물을 모시는 집사) 유모(34)씨의 핑크아악무. 선인장·다육식물은 칙칙할 거란 편견과는 달리 화려한 색깔이 특징이에요. 유씨 제공

선인장류 11가지를 키우는 '식집사'(식물을 모시는 집사) 유모(34)씨의 핑크아악무. 선인장·다육식물은 칙칙할 거란 편견과는 달리 화려한 색깔이 특징이에요. 유씨 제공

건식 조경의 가장 큰 장점은 쉽다는 겁니다. 선인장류 11가지를 포함해 식물 28종을 키우는 유모(34)씨는 "식집사 대부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물 주는 것"이라면서도 "건식 조경은 물 주는 주기 자체가 길어 바쁜 현대인이 쉽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고 추천했어요. 건식 조경 방식으로 정원 일부를 꾸며온 박혜진(44)씨 역시 "날씨가 건조해지고 뜨거워지면서 정원에 물 주는 일도 체력적으로 힘들어진다"며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건식 조경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식 조경의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높아요. 가시 돋친 선인장이나 자갈로만 구성된 정원이 못나고 삭막할 거란 편견 때문이죠. 이에 유씨는 "꽃처럼 생긴 식물 중에서도 선인장·다육식물류인 식물이 굉장히 많다"며 "핑크아악무, 석화(사막의 장미), 녹탑, 아메치스, 소인제복륜금, 바위솔, 보초 등을 키워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꾸몄다"고 말했어요.

꼭 선인장이나 다육식물만을 키울 필요도 없답니다. 박씨는 "(선인장이 싫다면) 램스이어나 큰꿩의비름처럼 잎이 통통해 자체적으로 수분을 저장하는 식물을 키울 수 있다"며 "(물이 많이 필요한) 잔디를 대체하기 위해 지피식물(패랭이, 꽃잔디 등)을 심고, 모래와 벽돌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 실장 역시 "세종수목원 내 자갈과 모래로 구성된 드라이 가든에는 물 관리가 용이한 붓꽃류와 그라스류가 심어져 있다"고 설명했고요.

식물을 이미 키우고 있다면 물 필요량에 따라 식물을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건식 조경이 될 수 있어요. 박씨는 "가뭄에 강한 식물은 햇빛이 드는 곳에 모아두고, 반대로 물을 자주 줘야 하는 식물은 반그늘이나 수도시설과 가까운 곳에 두는 식으로 정원을 그룹화하는 것도 물 절약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작은 정원이 모여 국가 정원을 이루기까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장 첫날인 2023년 4월 1일 오후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제공원정원박람회장이 북적이고 있다. 뉴시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장 첫날인 2023년 4월 1일 오후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제공원정원박람회장이 북적이고 있다. 뉴시스

물론 가속화하는 기후위기 앞에 작은 정원의 힘은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집사 시민이 늘어나는 건 국가 정원 도시를 만드는 거대한 효과로 이어지기도 해요. 지난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로 1,000만 방문객을 모으며 세계 정원도시로 자리 잡은 전남 순천시가 대표적입니다.

순천시는 국제 박람회를 앞둔 2021년, 시민과 함께 도시 전체에 정원·조경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이에 시민정원추진단과 함께 △1읍면동 1특화정원 만들기 △내 집·가게 앞 화분 내놓기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시민의 힘으로 도심 곳곳에 정원이 조성됐고, 국제 박람회와 연계한 도심정원 투어 코스에도 포함됐죠. 순천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를 포함해 도심까지 정원을 확장한 박람회 형태를 두고 국제사회에선 "환경 이슈를 시민의 삶으로 끌어들인 방식이 진정성 있고 지속가능하다"는 호평이 나왔습니다.

장원석 강원대 생태조경디자인학과 교수는 "순천시처럼 작은 단위의 지방 정원에서 시작해 국가 정원 단위로 확산하는 방식은 조경 정책에서도 바람직한 형태"라며 "정원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먼저 조경·정원 문화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국내 드라이 가든 찾아 구경하는 것부터"

국립세종수목원 중 화단이 건식 조경 형태로 조성된 정원의 모습. 박혜진씨 제공

국립세종수목원 중 화단이 건식 조경 형태로 조성된 정원의 모습. 박혜진씨 제공

이제 우리도 식집사로 거듭날 차례예요. 유씨는 건식 조경 입문자들을 향해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생김새와 특징이 다양한 다육식물 등을 찾아보며 내게 어울리는 식물이 뭔지 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남 실장도 "국내 여러 드라이 가든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다 보면 나만의 드라이 가든을 어떻게 조성할지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유난히 삭막한 이번 겨울, 앙상한 가지와 시멘트 바닥만 보다보면 지구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도 더 쉽게 메마를 수 있어요. 식물 키우기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내려놓고, 어떤 식물을 모시는 집사가 되고 싶은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 볼까요?

최은서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silver@hankookilbo.com으로 제보해주시면 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