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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이 질릴 때, 새해를 깨우는 매운 맛!

입력
2025.01.04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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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편집자주

열심히 일한 나에게 한 자락의 휴식을… 당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방법, 음식ㆍ커피ㆍ음악ㆍ스포츠 전문가가 발 빠르게 배달한다.

고추장찌개 ⓒ이주현

고추장찌개 ⓒ이주현

1월이다. 새해를 활기차게 열기 위해 에너지 넘치는 음식을 떠올려본다. 설날 음식 떡국, 보양식 삼계탕, 윤기 나는 쌀밥...본의 아니게 하얀 음식들로만 나열된 사이에서 새빨간 얼굴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 너를 빼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추만큼 한국인을 흥분시키는 음식이 없다. 혓바닥이 저릿해지는 통각에 가까운 매운맛. 뇌에서는 아드레날린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혀와 뇌를 동시에 강타한 매운맛 덕분에 스트레스 따위는 가뿐히 이겨낼 수 있다. 오죽하면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때 매운맛 수요가 증가한다는 통계도 있을까. 고추만큼 화끈한 성격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온 우리 민족에게 매운맛을 빼놓고 새해를 맞이하기란 아쉬운 일이다.

우리 밥상을 빨갛게 물들인 주인공의 역사는 놀랍게도 그리 길지 않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야 한국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낯선 외래 작물 출신으로 뒤늦게 한국에 들어온 작은 식물. 이 핸디캡을 딛고 고추가 한식 문화에 끼친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고춧가루를 넣어서 잘 어울리는 음식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음식은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지니 말이다.

한식에 고추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배경에는 쌀밥 중심의 식단이 있다. 18세기 무렵 쌀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우리 민족은 밥을 주식으로 삼았다. 탄수화물인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은 자연스럽게 짠 맛이 강해졌다. 소금은 점점 과잉 섭취하는데 공급량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해결책으로 고추가 등장했다. 반찬에 매운맛을 더하니 짠 맛은 상쇄되고 밥맛은 더욱 좋아졌다. 이 때부터 '밥 그리고 짭짤하면서 매콤한 반찬'이 한국식 식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20세기 중반 이후 고추의 매운맛이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면서 고추장이 탄생했다. 고추장의 매운맛은 정말 특별하다. 일차원적인 매운 맛이 아니라 복합적인 매운 맛이랄까. 그 비결은 바로 진하게 깔려있는 '단 맛'이다. 고추장을 만들 때 메주의 구수함, 곡식을 삭힌 단 맛, 고추의 매운 맛이 녹아든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매운맛이 존재하지만 달큰하면서 동시에 매운 것이 한국 고추장만의 고유한 맛이다. 사람은 오미(五味)라 하여 짠맛, 쓴맛, 신맛, 매운맛, 단맛을 느낀다. 이중에서 가장 빨리 맛을 느끼며 중독성도 강한 것이 단맛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고추장은 돌아서면 또다시 생각나는 매운맛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이웃나라의 매운맛은 어떨까. 일본은 고추를 비교적 빨리 수용했음에도 고추 재배는 18세기 중엽 이후에야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일본 음식에 고추를 넣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시치미'라는 향신료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긴 하지만 한국처럼 음식에 광범위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들에게는 와사비가 있다. 와사비에 대한 일본 문헌 기록은 10세기 초반부터 등장한다. 일본의 매운 맛은 맑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의 매운맛은 어떨까. 우리나라에 열풍을 불었던 마라맛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라는 쓰촨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매운맛이다. 고추 외에 후추, 천초 등을 섞어 만든다. 칼칼하고 얼얼한 매운맛이 특징이다. 쓰촨은 '천초'로 유명한 지역이다. 천초는 매운맛을 내는 작물로 우리나라에서도 고추가 유입되기 전에 사용되었던 식재료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고추로 만든 고추장이 나오기 전까지 천초로 만들던 '초시(椒豉, 천초장)'를 먹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워낙 적어 우리나라에서는 고추로 대체된 반면 중국에서는 아직도 천초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떡국과 기름진 명절 음식이 물린다면 이번에는 칼칼한 고추장찌개를 끓여보자. 애호박, 두부, 소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여기에 고추장을 크게 한 두 숟갈 떠 넣고 팔팔 끓인다. 매콤하면서 구수한 찌개 냄새에 벌써 몸속의 세포가 반응할 것이다. 얼큰한 국물을 먹고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우리 민족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다. 하얀 쌀밥과 매콤한 국물을 먹으니 온 몸에 뜨거워진다. 자, 시원하게 땀 한 번 흘리고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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