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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입력
2025.01.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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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8일째인 5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울타리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손편지와 물품이 놓여 있다. 무안=연합뉴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8일째인 5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울타리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손편지와 물품이 놓여 있다. 무안=연합뉴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 진도 팽목항에서 나부끼던 현수막을 기억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아이를 잃은 5월의 엄마가, 4월의 엄마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숱하게 가슴을 쳤을 5월의 엄마들은 그렇게 30여 년의 고통을 딛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일으켰다. 그리고 9년 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또 한 번의 참사 땐 4월의 엄마들이 그 일을 기꺼이 도맡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에 4월의 엄마가 쓴 편지 한 통을 유가족에게 전한 일이 있었다. 이런 내용이 적혔다. '참고 견디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을 떠나보낸 뒤 상상이나 했을까. 상처에 딱지도 채 앉기 전에 유가족 스스로가 참고, 싸우고, 세상을 다르게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올 거란걸. 5월의 엄마, 4월의 엄마, 10월의 엄마가 모두 비켜가지 못한 일이다.

이렇게 빨리 그 비극을 되새기게 될 줄은 몰랐다. 이태원 참사 2년여 만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숨졌다. 유가족은 호소했다. '특정 정당인 출신의 가짜 유가족' '보상금을 생각하며 싱글벙글일 것' 같은 무자비한 조롱을 멈춰달라는 이야기였다. 사고 발생 일주일도 안 된 기간에 경찰 내사 대상이 된 온라인 악성 게시글은 99건에 달했고, 삭제·차단 조치된 게시물은 260건을 넘어섰다. 어김없이 고개를 든 혐오와 조롱은 지난 참사들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걱정이 많아졌다. 사고 규명 과정마저 이전 참사들을 닮게 되진 않을까. 사고가 일어난 진짜 원인을 알고 싶다며 울부짖는 유가족을 향해, 정치적 해석이나 보상금 이야기를 들이밀어 중심을 뒤흔드는 그 잔인한 레퍼토리 말이다. 재발 방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까지 수년이 걸리고, 그 사이 반복된 참사로 또 수많은 목숨을 잃는 일을 우리는 너무 자주 겪었다.

이번 참사도 규명해야 할 요인이 많다. 조류충돌과 기체 고장 같은 사고기 내·외부 사정부터 콘크리트 둔덕 구조물의 규정 위반 여부, 국토교통부의 공항시설 및 안전관리 승인·감독 과정이 모두 조사 대상이다. 게다가 항공기 사고는 기체 제조사 등을 고려해 일부 과정을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라 원체 속도를 내긴 어렵다. 소모적인 갈등에 발목 잡혀 조사 결과 발표가 지체돼선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양 어머니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쓴 편지 속 위로의 말을 빌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께 전합니다. '부디 잘 버텨주시라고, 너무 많이 몸과 마음 상하게 하지 마시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하늘과 먼저 간 우리 아이들이 이 일의 되어감을 지켜보고 있고 언제든 함께 힘 모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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