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의 기후행동]
계엄의 밤 이후 혼란의 소용돌이 빠진 한국
기후위기 의제서 밀려난 사이 취약층 증가
취약층 기후변화 책임 적지만 피해는 더 커
일상 어서 회복되어 미래 대비할 수 있기를
편집자주
한 사람의 행동은 작아 보여도 여럿이 모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후대응을 실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이 4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작년 말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사태와 대형 사고 탓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계엄의 밤 이후 시민들은 매일 매시간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불안에 떨며 밤에도 뉴스를 확인하느라 깊은 잠조차 이루지 못한다.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각자 주어진 일들을 마치면 휴식을 취하며 다음을 준비하던 저녁과 주말도 사라졌다. 과거와 죽은 이들이 현재의 우리를 위해 치열하게 쌓아 올린 오늘을 지키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차디찬 거리로 나선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뜻을 뼈저리게 느끼고, '요즘 세상에 설마…' 하던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몇 년 후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하는 건 사치가 아닐까 고민될 정도다.
아차!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도 기본적인 생계와 일상이 보장된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당장 내 발등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이대로 두면 1, 2년 후 집에 화재가 날 것이라는 경고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지 않은가. 문제는 내 발등의 불을 끈다고 해서 집 한쪽 벽면을 타고 오르는 불이 함께 진화되는 건 아니듯, 하루와 한 달을 버티느라 급급한 사이에 기후위기는 더 무서운 속도와 위력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한민국의 기후불평등과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져 기후위기 대응조차 사치인 기후취약계층이 더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경기연구원은 경기도 내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 실태, 즉 기후격차를 파악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격차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어지는데 ①계층과 개인 간 기후변화 책임, 즉 온실가스 배출량 차이 ②기후위험과 피해의 차이 ③회복력의 차이이다.
경기도 31개 기초지자체 중 소득 상위 약 10%를 차지하는 3곳의 배출량은 하위 약 60%(19개) 지자체와 맞먹는데, 별도 설문조사 결과 배출량이 큰 지역의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육류 섭취, 스키 등 레저, 항공 여행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출량이 낮은 지자체가 다수 위치한 경기북동부 주민들은 더 많은 기후재난재해를 경험하고 피해도 컸다. 이 중에는 온열질환, 감염병 등 건강 문제도 포함돼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회복력도 높을 뿐 아니라 평소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었고, 반대로 저소득층 주민들은 더 큰 피해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과 대비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와 개인적 여력 모두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후위기에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노인·영유아·어린이·장애인은 기후위기 대응과 회복력의 기반이 되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취약한 저소득·옥외근로·독거노인라는 중첩된 문제를 보였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종말을 걱정하지만 우리는 (생계가 달린) 월말을 걱정한다'는 몇 년 전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의 구호처럼 기후위기 대응도 최소한의 기본 삶의 조건 위에서 가능하다. 어서 일상이 회복되어 시민들이 지금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나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계획하고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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