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금융위기 이겨낸 한국 경제
한국 미래는 밝을 거라는 믿음이 중요
위기 대응의 핵심 주체, 흔들지 말아야
1997년 외환위기는 ‘단기외채’ 위기였다. 90년대 후반 우리나라 은행은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1년 미만 만기의 달러 부채를 상당히 빌리고 있었다. 단기외채라고 하지만 만기에 모든 부채의 상환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채무자가 원하면 만기가 연장되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관행이다. 97년 하반기 우리나라 대외신인도가 악화되자 해외 금융기관들은 만기가 도래한 외채의 상환을 앞다투어 요구하였다. 뱅크런이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달러를 찾아 한국은행으로 달려갔다. 한국은행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드러났다. 한국 경제의 신인도도 바닥을 쳤다. 환율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경기는 급락하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다시 외환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바가 있다. 외환위기까지 가지 않았지만 금융부문의 단기 외환건전성 관리의 중요성은 정책당국에 각인되었다. 이후 우리나라 은행은 단기외채를 필요 최소한 수준에서만 빌리도록 감독되어 왔다. 한국은행은 때로는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외환보유고를 충분하게 쌓아 왔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단기외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 덕에 2025년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진단이 경제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낙관론의 취지는 아니다. 경제위기는 항상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람의 불행이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듯이, 시대착오의 계엄으로 새로운 경제위기의 씨앗은 뿌려졌다. 정부, 정치권, 전문가 집단 모두가 공유하여야 할 비상한 경계감이다. 위기를 경계하는 의식은 공유하되 계엄이 발단이었다면 지금은 전개과정이라는 점도 중요한 상황인식이다. 위기가 실현되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단계라는 뜻이다. 만일 막지 못한다면 이번 위기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이번에는 대외신인도가 아니라 대내신인도가 약한 고리일 가능성이 높다. 1997년 한국 경제에서 자금을 빼내갈 수 있는 경제주체는 외국인뿐이었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 모두와 기업이 거의 자유롭게 해외에 투자할 수 있다. 서학개미가 이를 상징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이런저런 이유로 어둡다는 논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에는 과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헤쳐왔다는 한국 경제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이 믿음이 흔들리고 외국인의 자금이탈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국 경제 이탈이 본격화할 위험이 있다.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국민은 국내자본시장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외자산 투자를 찾게 될 위험이다. 해외투자자도 가격변동에서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거래자만이 국내시장에 남을 것이다.
외환위기가 열병처럼 갑자기 찾아왔다면 이 위기는 만성질환의 모습일 것이다. 기업투자와 가계소비의 장기부진으로 성장이 사라지고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에 시달릴 것이다. 투자부진으로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어 환율이 상승하여도 수출증가와 수입감소로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는 효과는 제한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특기였던 환율변동에 따른 자연적인 치유경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대내신인도의 실종은 극복이 어려운 고질병이 될 것이다.
이 위기의 실현을 막을 핵심주체는 결국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경제정책의 리더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대통령의 등장은 탄핵정국 종결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올해 상반기는 어쩌다 보니 행정부 수반까지 대행하게 된 경제정책의 수장이 있을 뿐이다. 경제정책의 수장마저 사라지거나 정치공방의 틈새에서 무력화되는 상황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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