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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장사꾼이 설치는 나라의 종착점

입력
2025.01.10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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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후 갈등 '심리적 내전' 위험수준
이념 폭주한 국가 운명은 항상 비극
분열 팔아 표 사는 이들 꼭 기억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반공청년단 단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관저 사수 시위를 벌인 이들은 "윤 대통령을 지키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반공청년단 단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관저 사수 시위를 벌인 이들은 "윤 대통령을 지키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회 갈등 정도가 민주화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에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서신을 뿌리며 지지층을 규합하자, 대통령 관저는 단숨에 이념 투쟁의 전장으로 떠올랐다. 반(反)탄핵이 표가 된다는 걸 눈치챈 의원들은 보수단체 집회에서 큰절을 하거나 관저 정문에 모여 ‘외곽 경비’를 선다. "관저에서 밥 먹자"는 제안에 응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에겐 대통령 눈도장보다 사진 한 장이 더 소중한 것 같다.

대통령이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놓으면서 이념 싸움은 갈등을 뛰어넘어 ‘심리적 내전’(정치컨설턴트 박성민) 단계에 도달했다. 중도에 등 돌리고 극렬 지지층에게만 어필하는 ‘도파민 정치’는 이미 세몰이 공식이다. 사설의 점잖은 당부, 칼럼의 신랄한 호통, 정치원로의 온건한 가르침이 도파민의 짜릿함을 이겨내지 못한다.

작정하고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에게 당위(싸우면 안 돼), 도리(말로 풀자), 논리(너도 잘한 건 아니야)를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행패가 가져올 후과, 깽판으로 치러야 할 값을 알려주는 게 낫다. 이념 폭주와 분열 조장은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때론 나라를 절단 내기도 한다는 걸 고지해야 한다.

‘모든 이념의 격전장’이라 불리던 1930년대 스페인. 프리모 데 리베라 군사독재 몰락 후 1931년 등장한 제2공화국 당시, 좌우 모두 양 극단에서 동시에 정부를 흔들어댔다. 이 이념 충돌은 체제 안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결국 내전(1936~1939년)과 프랑코 독재로 이어졌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년) 때는 극좌에서 공산당, 극우에서 나치당이 공화국을 위협했다. 공화국 붕괴의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히틀러와 세계대전이다. 갈등을 외세가 이용하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야욕 때문에 시작된 게 분명하지만, 이 과정에서 푸틴은 민족주의자(극우)와 공산당(극좌) 등 친러 세력 간 다툼을 이용해 분리독립을 부추겼다. 프랑스 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 등 급진파의 폭주는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 독재로 이어졌다.

공통점이 있다. 극단적 이념 대립은 파국으로 치닫고, 갖은 혼란을 거친 뒤 종국엔 한 극단으로 급격하게 중심이 쏠리거나 독재자가 출현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팽팽하게 좌우로 당겨진 고무줄이 끊어지면, 남은 줄이 한 쪽으로만 빠르게 홱 날아가는 모습과 유사하다.

‘극단적 예시만 든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겠다. 아직은 그 말이 맞다. 한국은 앞서 열거한 나라들에 비해 인종·민족·계급 등에서 갈등 정도가 덜한 편이다. 그리고 지금까진 진영논리보다 사리판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중도층이 힘겹게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줄 알았던 헌법이란 지지대가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국가 중대사가 논리적 토론이나 사전 협의된 시스템이 아닌, 특정 학맥이나 무속인의 조언 등 불확실한 인적 변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도 알았다. 지도자의 망상에서 시작된 돌발행동이 국론을 둘로 쪼개고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과정도 목격했다. 지금은 심리적 내전이지만, 양쪽 다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된 상황에선 작은 불씨만 붙어도 '사실상 내전' 상황으로 비화할 수 있다.

선거가 3년이나 남았다는 걸 믿고, 마음껏 극단에 의지하며 분열을 획책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다음 선거에서 안면을 바꿔 △낮은 자세 △준엄한 민심 △통합과 협치 같은 말을 운운하도록 두고볼 순 없다. 단테가 ‘신곡’의 지옥 8층 한쪽에 분열 조장자들을 가두었던 것처럼, 도파민 장사에 여념 없는 그들의 이름을 우리 마음속 장부에 똑똑히 기록해야 한다.

이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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