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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청년 12인의 색다른 '워홀'…그들은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다

입력
2025.03.22 18: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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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4주간 서울 강남 매장서 근무
면적?고객 '최상위' 매장 체험
외국인 고객 너무 많아 인상적
여가 시간엔 서울 '핫플' 탐방
"일하고, 놀면서 한 단계 성장"
전문성·소속감 높여 본사 '윈윈'

맥도날드의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홍보 포스터. 맥도날드 제공

맥도날드의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홍보 포스터. 맥도날드 제공

1월 20일 이른 아침, 구규원(23)씨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산 집을 나섰다.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행선지는 이역만리 호주도, 이웃나라 일본도 아닌 서울. 항공권도, 비자도 필요 없는 곳이다. 그는 부산역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서울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공유주택. 방을 따로 쓰되 거실∙주방∙세탁실 같은 시설은 함께 쓰는 곳이다. 방값은 공짜. 그는 이곳에서 대중교통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서울 강남구 맥도날드 코엑스점으로 출근할 예정이다. 이것은 '워홀'인가.

두어 달 전, 규원씨가 여느 때처럼 부산 북구 맥도날드 화명DT(드라이브스루)점에서 크루(매장 직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낯선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형용 모순 같은 제목이었다. 서울 매장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도 쌓고 서울살이도 체험할 수 있는 맥도날드 본사의 프로그램이었다. 평생 부산을 벗어나본 적 없는 그였다. 4년 동안 같은 매장에서, 같은 업무를 반복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였다. 동네 친구 말고 새로운 사람도 알고 싶었다. "큰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다." 규원씨가 워홀에 지원한 배경이었다.

그렇게 규원씨를 비롯한 지방 청년 12명이 워홀 대상자로 뽑혔다. 부산∙대구∙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서울로 온 이들은 2주 동안 근무지(강남 일대 매장)와 숙소, 성수·용산 같은 '핫플' 등 서울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들의 서울살이는 어땠을까. 한국일보는 11일 규원씨와 김나은(24)씨, 김홍근(27)씨 등 '워홀러' 세 명을 만났다.


외국인이 북적거렸다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프로그램 참가자인 김홍근(왼쪽부터)씨, 구규원씨, 김나은씨가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맥도날드 방배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맥도날드 제공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프로그램 참가자인 김홍근(왼쪽부터)씨, 구규원씨, 김나은씨가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맥도날드 방배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맥도날드 제공

세 사람이 서울서 일하는 곳은 코엑스점. 대구 수성구 만촌DT점에서 크루를 이끄는 팀 리더로 근무한 나은씨는 첫날부터 당황했다. 외국인 고객이 너무 많았기 때문. 영어로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구 달서구 대구본리DT점에서 팀 리더를 맡았던 홍근씨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코엑스점에서 교육해야 하는 크루 중에는 외국인 직원이 있었다. 규원씨는 "고객 절반은 외국인인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이 마주한 서울의 첫 이미지는 글로벌이었다.

코엑스점은 면적이 431㎡(약 130평) 규모에 달하는 초(超)대형 매장. 내·외국인 관광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고객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세 사람 모두 "원래 근무지보다 훨씬 바쁘고, 정신 없었다"고 했다. 점심시간, 수많은 직장인들이 애플리케이션(앱) 'M오더'로 햄버거 등을 미리 주문한 후 픽업해가는 장면도 낯설었다. 점심 피크 시간이 얼마나 바빴는지 홍근씨는 "고객님, 모니터에 주문번호 확인해주세요" 잠꼬대를 할 정도였다. 서울은 사람도 많았다.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프로그램 참가자인 김홍근(왼쪽부터)씨, 구규원씨, 김나은씨가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맥도날드 방배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맥도날드 제공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서울' 프로그램 참가자인 김홍근(왼쪽부터)씨, 구규원씨, 김나은씨가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맥도날드 방배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맥도날드 제공


세 사람은 빠르게 적응했다. 어느새 나은씨는 자연스럽게 "Can I take your order?(주문하시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규원씨도 같은 매장의 필리핀 출신 크루와 친해져 영어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홍근씨는 코엑스점 '친절왕' 자리에 올랐다. 그는 하루에만 10개 넘는 고객 칭찬 글을 받기도 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특정 직원에게 이 정도 칭찬 글이 쏟아진 것은 전례가 없다"고 했다.


한강서 라면 먹고, 성수서 쇼핑

2024년 10월 22일부터 8주간 진행된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대만'에 참여한 직원들의 모습. 맥도날드 제공

2024년 10월 22일부터 8주간 진행된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대만'에 참여한 직원들의 모습. 맥도날드 제공


이 프로그램에서 워킹만큼 중요한 게 홀리데이다. 이들은 쉬는 날 각자 방식으로 서울을 만끽했다. 나은씨는 첫 휴일에 '핫플' 성수동을 찾아 빵도 사고, 브런치도 먹고, 쇼핑도 했다. 그날 하루 걸음 수만 2만 보에 달했다. 규원씨도 요즘 2030이 많이 가는 동묘 구제시장에서 쇼핑을 즐기고 용산 맛집을 찾았다. 대학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하는 홍근씨는 휴무일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진행하는 특강을 듣거나 국립무용단 공연을 보러 다녔다. 워홀러들끼리 단체로 한강이나 잠실 롯데월드에 놀러가기도 했다.

일하고, 여가를 즐기다 보니 4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워홀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나은씨는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서울 중심부 매장에서 일하면서 "업무나 영어 등 배울 게 많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에서 정규직 매니저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규원씨 또한 "기존 매장에서 다소 나태해졌는데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면서 한 단계 성장하게 됐다"고 했다. 홍근씨는 "'정말 내가 고객을 잘 응대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있었는데 코엑스점에서 수많은 고객들로부터 칭찬을 받다 보니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2024년 초 강원 강릉에서 진행된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강릉' 참가자 12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유튜브 캡처

2024년 초 강원 강릉에서 진행된 맥도날드 '워킹 홀리데이 in 강릉' 참가자 12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유튜브 캡처


맥도날드는 워홀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방침이다. 직원의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고 소속감을 높이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판단에서다. 2023년 여름 제주 워홀에 참여했던 참가자 11명 중 다수는 각자 매장으로 돌아간 후 팀 리더나 매니저로 성장했다. "공고가 뜨면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지원하세요." 워홀이 끝나고 각자 매장으로 돌아가는 세 사람이 '후배' 크루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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