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2018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행사에 나왔을 때 모습. AP 연합뉴스
1980년 중국 항저우시의 관광지 시후(西湖)엔 서양 외국인이 보일 때마다 다가가 말을 거는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이렇게 익힌 영어로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 영어교육과에 붙은 그는 강사로 이름을 날린다. 지역에서 가장 큰 통역 회사까지 꾸리자 시 정부는 미국 투자유치사업을 맡긴다. 태평양을 건넌 그는 시애틀에서 인터넷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귀국 후 웹페이지 제작사에 이어 99년 중국의 첫 전자상거래 기업을 세운다. 바로 알리바바의 마윈(61)이다.
□ 회사는 초고속 성장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마윈을 만난 지 6분 만에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2014년 뉴욕 증시 상장으로 손 회장의 투자 수익은 3,000배가 됐다. 중국 최고 부자가 된 마윈은 이때부터 ‘재물신’으로 추앙받는다.
□ 온라인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와 전자결제시스템 알리페이까지 성공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그러나 2020년 10월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중국공산당 인사가 참석한 행사에서 “당국의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비판한 게 문제였다. 이는 당 권위에 대한 중대 도전으로 여겨졌다. 괘씸죄로 찍혀 3조 원도 넘는 사상 최대 과징금에 금융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 공개마저 취소됐다. 사실상 해외로 쫓겨났고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 최근 중국 국영 CCTV가 시진핑 주석과 마윈이 악수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최고위급 지도자도 TV에서 사라지면 숙청된 것으로 해석되는 중국이다. 그런데 몇 년간 안 보이던 마윈이 시 주석 주재 간담회에, 그것도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함께 나왔으니 의미심장하다. 중국 경제가 마윈을 다시 불러야 할 정도로 힘들다는 신호로도 분석된다. 트럼프 파고를 넘기 위해 기업 사기를 북돋우며 전열을 가다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곧바로 마윈은 3,800억 위안(약 75조 원) 투자 발표로 화답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과정에서 마오쩌둥 시대로 퇴보했던 중국이 다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으로 돌아오는 듯한 모습이다. 부활한 마윈의 '열려라 참깨' 주문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경계할 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