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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빛을 가진 알비노 소년의 다음 계절을 응원하며

입력
2025.03.14 1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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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빛 뒤에 선 아이'

편집자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박주현의 '빛 뒤에 선 아이'의 한 장면. 우리나비 제공

박주현의 '빛 뒤에 선 아이'의 한 장면. 우리나비 제공

공공장소에서 아기가 울 때면 아기와 보호자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미소를 보내곤 했다.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며 노려보는 시선이 보호자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그런 시선까지도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이든 비난이든 시선이 집중되는 것 자체가 당황스러울 테니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듯 각자 하던 일을 계속하는 태도였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을 마주칠 때도 마찬가지다. 뚫어져라 보지 않되 너무 황급히 시선을 돌리지도 않으려고 신경 쓴다. 이제는 숙련되어 시선 처리를 꽤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과거의 나는 나도 모르게 놀라거나, 신기해하거나, 감탄했다. 더 어렸을 땐 뒤돌아보거나 수군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내 무례한 시선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상대방은 그런 시선을 수백, 수천 번 견뎌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박주현 작가의 그래픽 노블 '빛 뒤에 선 아이'의 주인공 유진은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집요한 시선의 침범을 받는다. 전신성 백색증으로 인해 새하얀 피부, 하얀 머리칼과 눈썹, 붉은 눈동자를 가진 유진에게서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얼핏 칭찬처럼 보이는 "매력적이다", "얼굴이 하얘서 부럽다"는 말은 정작 당사자의 고통과 불편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말일 뿐이다.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가 없어 자외선에 취약하기 때문에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유진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며, 가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한여름에도 온몸을 꽁꽁 싸매야 한다. 시력도 점차 잃어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화창한 날 바다를 맨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빛 뒤에 선 아이·박주현 지음·우리나비 발행·224쪽·1만5,000원

빛 뒤에 선 아이·박주현 지음·우리나비 발행·224쪽·1만5,000원

전체 원고를 100% 수작업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계절과 감정의 변화를 아름다운 색채로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유진이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알비노가 겪는 신체적 불편과 사회적 편견을 조용히 드러낸다. 작가는 유진을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메신저로 소비하지 않는다. 감정을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저 유진의 조금 남다르지만 대체로 평범한 일상과, 여느 십대처럼 미래를 고민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가만가만 따라갈 뿐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자 제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엔 알비노 특성상 빛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적 의미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빛 뒤의 아이'나 '빛 뒤에 있는 아이'가 아닌, '빛 뒤에 선 아이'라는 표현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남들과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삶에서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유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진의 다음 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미깡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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