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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매화 가장 먼저 피는 곳... 여행자 발길 붙잡는 '힙'한 고택

입력
2025.03.19 14:00
수정
2025.03.19 17: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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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매곡동 '탐매마을'
'핫플'이 된 고택 늘어선 향동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봄이 찾아오면 전남 순천의 매화가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전남 순천시 매곡동 홍매화길의 매화가 붉게 물들었다.

봄이 찾아오면 전남 순천의 매화가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전남 순천시 매곡동 홍매화길의 매화가 붉게 물들었다.


전남 순천 매곡동에서도 가장 먼저 핀다는 매산고등학교에 매화가 만개했다.

전남 순천 매곡동에서도 가장 먼저 핀다는 매산고등학교에 매화가 만개했다.

봄은 눈에 맺히기 전, 코끝부터 간지럽힌다. 산수유나 벚꽃보다 한 뜸 먼저 피는 봄꽃 첫 주자 매화가 달짝지근한 향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발길이 닿은 곳에는 한껏 붉은 꽃봉오리가 펼쳐진다. 꽃 사이를 오가는 꿀벌들의 날개소리와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의 촉감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매화가 봄을 알렸다.

매화가 틔우는 햇봄을 오감으로 온전히 느끼려면 고즈넉한 여유가 필요하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매화 성지보다 전남 순천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평년이라면 3월 초, 매화는 이미 피고 질 시기다. 하지만 유독 개화가 늦은 올해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핀다는 ‘탐매마을’ 순천 매곡동조차 이제 막 꽃봉오리를 맺었다.

늦게 핀 매화와 함께 고택의 멋이 살아 있는 옛 도심의 거리가 먼 길을 찾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홍매화가 절정을 향해 달릴 이번 주 '힙'한 감성을 즐길 수 있는 순천에서 봄을 맞는 것은 어떨까.

가장 먼저 '햇봄' 즐기는 '탐매마을'

순천 탐매마을이 시작되는 탐매정원에서 내려다본 홍매화길 초입.

순천 탐매마을이 시작되는 탐매정원에서 내려다본 홍매화길 초입.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를 볼 수 있다는 마을답게 순천 매곡동에서도 매년 매화 축제가 열린다. 마을 주민들은 인근의 대대적인 봄꽃 축제와는 다른 ‘작은 마을 축제’라고 수줍게 말한다. 매곡동의 매화 풍경은 주민들의 삶을 빼닮은 소박하고 편안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축제 시기에 맞춰 방문하지 못했더라도 골목골목 흩어져 있는 나만의 매화 절경을 찾아보는 것이 순천의 매화를 즐기는 법이다. 초행길이어도 순천의 '탐매마을'을 구석구석 즐길 방법을 소개한다.

마을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홍매화거리’는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에 마련된 ‘탐매정원’부터 시작된다. 정원에서 시작해 원불교 순천교당에서 서쪽으로 꺾어, 순천세빛중학교 옆길을 따라 순천대 후문까지 이어지는 번개 모양의 길이다. 하지만 길 밖 숨은 명소는 따로 있다. 탐매정원에서 도보로 5분만 더 내려가면 홍매화거리 못지않게 아름다운 매화를 눈에 담을 수 있는 매산고등학교와 순천의료원이 있다. 순천의 꽃구경은 이곳에서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

순천의료원 인근에 홍매화가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순천의료원 인근에 홍매화가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순천의료원과 매산중학교 사잇길에 붉은 매화가 피고 있다.

순천의료원과 매산중학교 사잇길에 붉은 매화가 피고 있다.

매산고는 예전부터 지역 주민들의 매화 명소였다. 학교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두 번째 계단 양옆으로 홍매화와 백매화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30년 넘게 근무한 매산고 관계자는 “여태 본 매화 중 올해 매화가 가장 크고 예쁘게 폈다”고 전했다. 매년 예뻐지는 매화 덕에 입소문을 타고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찾을 정도로 방문객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탐매마을의 매화 대부분이 아직 피기 전에 만개하는 ‘매화 1번지의 1번’ 나무 격이라 다른 나무의 꽃이 만개할 때면 오히려 매산고의 꽃은 절정을 넘겼을 수 있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학생들이 수업하는 공간이니 만큼 경비실에 쉬는 시간을 확인하고 조용히 감상하고 나오는 것이 올바른 예절이다.

매산고에서 나와 동쪽으로 걷다 보면 매산중학교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과 맞닿은 순천의료원 앞뜰도 매화가 가득하다. 이곳의 매화를 즐기며 쭉 올라오면 작은 육각정 인근에 홍매화길 초입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매화길 초입은 옹벽에 그려진 매화벽화와 쭉 늘어선 매화나무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길 초입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주택가로 이어지는 골목이 있는데, 이 골목에는 매곡동에서 처음으로 매화를 심었다고 알려진 ‘홍매화집정원’과 사계절 내내 꽃이 핀다는 ‘감수헌’이 있다. 홍매화집정원과 감수헌은 매곡동의 3개 '개방정원' 중 두 곳이다.

'개방정원'은 개인 주택 등에 조성한 정원이지만 아름답게 꾸며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높다. 순천에는 국가정원뿐만 아니라 ‘개방정원’이라는 동네 정원이 곳곳에 있다. 순천시를 통해 정원주와 방문 일정을 조율한다면 누구나 둘러볼 수 있다. 정원주 한 명 한 명의 손길과 마음이 담겨 있는 개방정원은 치밀하게 설계된 대형정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공식 개방정원이 아니더라도 이 일대는 고즈넉한 고택과 예약 없이도 볼 수 있는, 잘 가꾸어진 정원이 많으니 여유를 갖고 둘러보자. 인심 좋은 주민들은 마당의 매화를 보고 가라고 직접 대문을 열어준다.

동네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는 구 삼산중학교 부지.

동네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는 구 삼산중학교 부지.

골목에서 나와 홍매화길을 걷다 보면 지나가다 누구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낮은 담장을 친 '사립문정원'을 볼 수 있다. 이를 지나 원불교당에서 서쪽으로 가면 구 삼산중학교 부지가 나온다. 학교가 신시가지로 이전한 이후 아직 개발이 안 돼 빈 학교 운동장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처럼 쓰이고 있다. 학교 옹벽 아래를 따라가는 홍매화길은 물론 학교 부지 내로 올라가는 진입로변에도 홍매화가 빼곡하니 잠시 올라갔다 오자. 담쟁이넝쿨이 적당히 올라온 폐교의 모습도 서정적이다.

학교 진입로에서 300m가 좀 안 되게 서쪽으로 올라가면 매곡동의 세 번째 개방정원인 ‘매산등 100년 정원’이 있는데,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150년 수령의 후박나무가 인상적이다. 정원까지 가는 길에도 풍성한 매화가 이어진다. 다만 이 일대는 농지가 많아 동물이 많다. 주민 안내 없이 탐방하기에는 안전 우려가 있다.

매곡동 '골목정원'의 영춘화와 행정복지센터 아래 골목의 홍매화가 봄을 알리고 있다.

매곡동 '골목정원'의 영춘화와 행정복지센터 아래 골목의 홍매화가 봄을 알리고 있다.

다시 홍매화길로 돌아와 순천대 후문까지 걸었으면 같은 길로 돌아오지 말고, 주공아파트 단지를 따라가보는 게 좋다. 단지의 서쪽과 남쪽 둘레를 따라 이어진 길에도 붉은 꽃이 한가득이다. 이 길에서 150m 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매곡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데, 이곳부터 150m가량 이어지는 골목길이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장소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숨은 꽃길인 데다, 길 한가운데 이색적인 정원인 '골목정원'을 볼 수 있다. 집 외벽에 화단을 층층이 쌓아 만든 정원으로 위에서 아래로 물이 자연스레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전남 순천시 매곡동과 향동 일대 매화 감상 추천 코스. 그래픽=강준구 기자

전남 순천시 매곡동과 향동 일대 매화 감상 추천 코스. 그래픽=강준구 기자


'핫플'과 고택의 조화 '향동'

인증샷 명소 '사운즈옥천'의 홍매화가 담장 위로 풍성하게 만개했다.

인증샷 명소 '사운즈옥천'의 홍매화가 담장 위로 풍성하게 만개했다.

매화를 보며 한껏 봄에 취했다면 바로 매곡동 남쪽에 위치한 향동에서 숨을 돌리자. 원도심 일원인 향동은 근현대 지어진 고택과 전통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신시가지 조성으로 원주민은 많이 줄었지만, 이들이 떠난 고택에는 예술공방, 갤러리, 카페, 음식점 등 '힙'한 공간들이 들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특히 젊은 여행객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레트로’ 공간이 많다. 향동을 가로로 관통하는 ‘문화의 거리(금곡길)’와 ‘옥리단길(옥천길)’을 두 중심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꽃놀이 후 숨을 돌릴 만한, 세월이 쌓은 멋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을 소개한다.


◆고택에서 즐기는 매화 '사운즈옥천'

카페 '사운즈옥천'은 마당에 핀 커다란 매화 아래로 옥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구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다.

카페 '사운즈옥천'은 마당에 핀 커다란 매화 아래로 옥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구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다.

'사운즈옥천'은 매산고를 뛰어넘는 거대한 홍매화가 아름다운 카페다. 카페 바로 앞에 흐르는 옥천을 건너는 징검다리에 서서 담장 위로 크게 자란 홍매화를 걸고 찍는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졌다. 이곳의 매화 역시 다른 매화가 겨우 봉오리를 맺을 때 만개할 정도로 빨리 피기 때문에 순천을 이르게 찾은 여행객들도 충분히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상징과도 같은 홍매화뿐만 아니라 고택 곳곳이 대표가 직접 수집한 골동품으로 장식돼 있어 둘러보는 맛이 쏠쏠하다. 옥천 반대편 길 담장 안쪽에는 앙증맞게 핀 백매화도 한 그루있다. 음료를 파는 갤러리를 표방하는지라 음료값은 다소 비싸다.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가 8,000원이고, 음료를 구매하지 않고 사진 촬영만 원하는 방문객에게도 입장료 5,500원을 받는다.


주인장이 수집한 소품으로 꾸며진 '사운즈옥천'.

주인장이 수집한 소품으로 꾸며진 '사운즈옥천'.


◆장독, 지게... 정감 있는 한옥 '다올재'

옹기와 커다란 금목서로 꾸며진 한옥 숙소 '다올재'의 마당.

옹기와 커다란 금목서로 꾸며진 한옥 숙소 '다올재'의 마당.

옛 시골 할머니 집을 떠올리게 하는 한옥 '다올재'는 다원과 숙박을 겸한다. 지게와 광주리가 놓인 대문을 지나면 커다란 금목서가 방문객을 반겨준다. 본채를 마주하면 마치 명절에 할머니집에 내려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정겨운 느낌이 든다. 툇마루 뒤로는 안방을 비롯한 방 네 칸이 보이고, 마루 양 끝에는 각 두 칸짜리 방으로 들어가는 여닫이문이 있다. 주인장의 부모가 직접 사용하던 가구와 소품을 그대로 방 내부에 옮겨놨다. 주택은 직접 살던 집이 아니지만, 마당의 장독대부터 대문의 지게까지 어머니가 담던, 아버지가 메던 것들이라고. 주간에는 전통차, 말차, 홍차 우리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다도 체험은 1만 원에서 2만 원, 작은방 숙박은 평일 1박 7만 원, 큰방은 9만 원이고 주말엔 방마다 2만 원씩 더 받는다.


옛 시골집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올재의 전면.

옛 시골집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올재의 전면.


과거 사용한 지게와 바구니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품이 다올재에 있다.

과거 사용한 지게와 바구니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품이 다올재에 있다.


◆아늑한 다락이 있는 '구디스파이'

소품샵 겸 베이커리 카페인 '구디스파이'의 다락.

소품샵 겸 베이커리 카페인 '구디스파이'의 다락.

'구디스파이'는 소품숍(가게의 테마에 맞는 수집·인테리어·관상용 제품을 선별·판매하는 편집가게)과 파이 베이커리를 겸한다. 외벽의 작은 타일과 비대칭으로 찢어진 듯한 지붕은 의도하지 않은, 원래 주택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꾸미지 않은 날것이 최신의 유행이다. 가게 내부는 감성이 묻어나는 일러스트와 각기 다른 크기의 가구로 꾸며져 있다. 계산대 옆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아늑한 다락방과 우측 방 뒤 문을 통해야 볼 수 있는 소품 매대가 이곳의 숨은 매력을 발산한다. 계절에 따라 판매하는 파이 종류는 바뀌지만 대부분 5,000원 내외로 맛볼 수 있다.


구디스파이의 독특한 외벽과 비대칭 지붕은 옛 주택의 모습 그대로다.

구디스파이의 독특한 외벽과 비대칭 지붕은 옛 주택의 모습 그대로다.

이외에도 구디스파이에서 20m만 동쪽으로 가면 있는 골동품 가게 '옥봉이네', 지역 개성을 잘 살린 문구 소품을 취급하는 ‘일상모과’(현재 소품숍은 잠시 쉬고 공방만 운영 중이다), 직접 만든 가죽과 원목 제품을 선보이는 ‘스프레드우드’ 등 향동 일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숨은 보석 같은 공간들이 흩어져 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골목을 직접 걸으며 내 취향의 공간을 발견해보자.

순천=글·사진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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