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바둑 대결 그린 영화 '승부'
오는 26일 개봉

'승부'의 이병헌과 김강훈.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서로 자극받고 배우며 자신을 뛰어넘는 과정이다. 진정한 강함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발현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경쟁 관계에 놓인다. 바로 그때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을 되새긴다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대결을 그린 '승부'의 이야기다.
영화는 한국 바둑의 1인자로 군림하던 조훈현(이병헌)의 삶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적수가 없던 그는 9세 소년 이창호(김강훈)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제자로 들인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아내를 '작은 엄마'라 부르며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조훈현은 기본기의 중요성과 겸손의 미덕에 대해 가르치며 이창호를 엄격하게 훈련시킨다.
천부적 스피드와 화려한 감각을 자랑한 조훈현과 달리 이창호는 기계 같은 정확성과 냉정한 수읽기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간다. 무표정한 얼굴에 내성적인 성격,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침착한 제자는 무섭게 성장해 스승과 대결을 펼치기에 이른다. 실제로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은 한국 바둑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당대의 1인자인 스승과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제자의 싸움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훈현을 연기한 이병헌.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두 사람은 조훈현의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같이 타고 이동해 대국장으로 들어갔고 온종일 싸웠다. 오랜 기간 조훈현의 바둑을 연구해온 이창호는 급기야 사제대결에서 반집 차로 승리를 맛본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이기는 게 프로의 의무"라고 소리치지만, 좌절감과 심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시 대중은 스승이 직접 키운 제자에게 밀리는 모습에 감동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때 조훈현은 "제자가 나를 넘어서 기쁘다"고 말했고,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승부라고 바라봤다. 영화 '승부'는 조훈현이 겪었을법한 내면의 소용돌이를 휘몰아치게 그려내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병헌 특유의 눈빛 연기와 진지함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 이병헌은 조훈현의 턱과 입을 괴는 손 제스처, 승리가 예감될 때 한쪽 다리를 떠는 모습까지 면밀히 연구해 모사했다. 관객을 단숨에 납득시키는 힘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병헌 역시 '승부'를 통해 또 한 번 자신과의 대결을 펼친 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형주 감독은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를 쓰자마자 이병헌이 적역이라고 생각했다며 "고수의 풍모, 당당함, 무너졌을 때의 처절함까지 극과 극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이병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바둑판을 앞에 두고 눈빛의 떨림까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그가 이병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영화 '승부'의 현봉식.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의 고창석.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마약 파문'으로 영화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유아인 역시 이창호를 열심히 연구한 기색이 역력하다. 캐스팅 소식이 전해진 후 캐릭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를 비웃듯 전작들의 이미지를 완벽히 지워내고 호연을 펼쳤다. 감독의 말처럼 '주연 배우로서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사건'을 일으킨 점이 못내 아쉬운 순간이다.
이 외에도 프로 기사이자 바둑 기자 천승필 역을 맡은 고창석부터 조훈현과 이창호의 전설적인 사제 관계를 지켜보며 함께한 이용각 프로 기사 역의 현봉식, 그리고 스승과 제자와 한집에서 동고동락했던 조훈현의 아내 정미화 역의 문정희, 바둑기사 남기철 역으로 특별출연한 조우진까지 모든 배우들이 연기 내공을 뿜어내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승부'는 바둑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또한 모두가 아는 실화임에도 관객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오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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