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동물

"한국 동물정책, 이렇게 바꿔주세요" 시민들의 바람과 현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동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동물복지 제도를 수립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정책을 설계하려면 객관적 근거와 과학적 증거를 기반에 둬야 한다. 그 객관적 근거 중 하나는 바로 ‘시민 인식’이다. 동물보호법 등 동물보호 관련 법과 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지만, 시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동물에 대한 생각은 경험과 배경에 따라 차이가 크다. 동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정도와 수요를 조사하는 ‘국민인식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2021년부터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동물복지 전반과 관련 제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역시 12월12일부터 17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2,000명 대상으로 '2023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 36%가 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을 기르게 된 경로로는 ‘가족, 친구, 친지 등 지인에게서 무료로 분양받았다’는 응답이 46.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난 ‘펫숍 등 동물판매업소’(14.6%)보다 3배가 높은 수치다. 직접 아는 지인에게서 유료 또는 무료로 분양받았다는 응답자 중 68.7%는 ‘지인이 키우던 동물이 낳은 새끼를 분양받았다’고 응답했다. ‘지인이 최근(1년 이내)에 입양 또는 분양받은 동물인데 사정 상 기르지 못해 동물을 넘겨받았다’는 응답은 16.6%로 나타났다. 한편, 반려동물을 기르는 응답자 중 15.7%는 최근 5년 이내 기르던 반려동물이 새끼를 낳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이 중 60% 이상은 ‘지인에게 무료로 입양’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아직도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가정에서의 반려동물 번식이 일어나고 있고, 태어난 동물들이 개인 간에 분양·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어나는 모든 동물들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책임지고 복지를 제공할 사람들이 전국 도처에 줄 서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2022년 기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동물은 11만3,440마리이다. 이 중 안락사된 동물은 1만9,043마리, 보호소에서 폐사한 동물은 3만,490마리로 전체의 43.7% 다. 마릿수로 따지면 하루에 310마리가 입소하고, 135마리가 보호소에서 죽은 셈이다. 입양된 동물은 27.5%에 불과한데, 이 또한 민간 동물보호단체가 기증받은 숫자를 포함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정을 찾은 동물’의 숫자라고 보기 어렵다. ‘잘 키울 사람’의 숫자보다 태어나는 동물의 숫자가 더 많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보호소로 유입되는 ‘잉여 동물’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려면 태어나는 동물을 줄이고, 아무나 키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개의 경우 66.1%, 고양이의 경우 81.5%가 중성화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낮은 비율은 아니지만, 지역 규모, 사육 행태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 점이 주목할 만하다. 반려견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응답은 도시가 68.2%, 농어촌이 50.8%로 17% 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실외에서 기르는 개의 중성화 비율은 43.2%로 실내 68.9%보다 훨씬 낮았다. 개를 실외에서 묶어서 키우는 경우 출산, 번식 경험은 40.5%로 실내 11.1%보다 네 배 가까이 높았다. 한편 전체 응답자 중 8.5%가 최근 5년 동안 동물을 유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개를 실외에서 기르는 응답자의 유실 경험은 27.3%로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즉,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밖에서 길러지는 개들은 중성화되어 있지 않은 비율은 높고, 동물등록 비율은 낮으며, 관리 부실로 유실되기도 쉽다는 것이다. 봄만 되면 농촌 지역 동물보호센터에는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동물이 대책 없이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준비되지 않은 양육자가 동물을 기르는 것도 문제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 중 12.5%, 10명 중 1명 이상이 최근 5년 이내 기르던 동물의 양육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양육 포기 경험이 높았고, 지역 규모별로는 농어촌이 도시보다 높았다. 개의 양육을 포기한 경험자 156명을 대상으로 이유를 질문하자, ‘예상보다 외출, 출장, 여행 등 생활에 제약이 많아서’(28.8%),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25.6%), ‘예상보다 돌보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22.4%)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어려움들은 동물을 기르기 이전에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시민들이 유실·유기동물의 증가와 동물복지 저해, 양육자 책임 부족 등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제도 강화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89.9%가 ‘반려동물을 기르기 전 사전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전교육제를 통해 교육해야 할 내용으로는 ‘반려동물 양육자가 갖춰야 할 책임감’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반려동물 등록제 개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1회만 등록하도록 하는 현행 반려동물 등록제를 매년 갱신하는 ‘갱신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93.3%에 달했으며, 현재 개에 대해서만 의무화하고 있는 반려동물 등록 대상을 고양이로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도 90.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려동물에 대해 매년 일정한 등록비를 지불하도록 하거나 세금을 부과하면 반려동물 양육자 책임 강화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71.1%로, 2022년보다 7.2% 포인트 증가했다. 미국, 독일,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의 경우 정기적으로 소정의 등록비를 내고 동물등록정보를 갱신하도록 하고 있는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동물, 많은 숫자의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 등에게 더 많은 등록비를 부과하는 등 사회의 적정한 반려동물 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 중성화된 개의 등록비는 연 15싱가포르 달러,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개의 등록비는 90싱가포르 달러다. 3년 단위의 등록은 중성화 수술을 한 개만 허용된다. 미국은 각 주마다 매년 5달러에서 15달러 등 그다지 높지 않은 등록비를 부과하는데, 대신 중성화하지 않은 개는 2배에서 최고 10배까지 등록비를 부과한다. 시카고 시 등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상대적으로 입양 수요가 적은 노령 동물에게는 등록비를 감면해 주기도 한다. 한국도 비록 소액이나마 매년 등록비를 부과한다면 무분별하게 반려동물이 번식하도록 방치하는 사례도 감소할 것이고, 중성화 수술을 받은 동물,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한 동물은 감면 혜택을 주는 등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 인식과 요구 수준은 매년 높아지는데 비해 동물을 보호할 제도와 이를 실행할 행정력은 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올해 안에 정부는 제3차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정부와 국회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반려동물 1,500만 시대를 ‘산업 육성의 기회’, 또는 ‘표밭’으로만 해석한다면 동물복지는 공허한 구호로 그칠 것이다.

동물기획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