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돌고 돌아 결국 없던 일로 됐다. 용역을 맡은 외국기관(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21일 내린 결론은 기존 김해공항의 확장. 두 후보지 가덕도와 밀양, 어느 쪽 손을 들었더라도 나라가 두 동강 날 판이었으니,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솔직히 지역주민들은 이 사안에 대해 그리 대단히 민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신공항 유치로 집값이 좀 오르지 않을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에게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피를 튀겨 가며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해야 할 일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영남이 고향인 내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뭐가 그리 중하냐?”는 반응이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들에겐 신공항이 몹시도 ‘중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왜 안 싸우냐”고, “우리 지역이 탈락하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되레 지역주민들을 열심히 부추겨왔다. 그래도 지자체장들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해 줄 부분이 있다. 정부에서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에 무려 10조원 가량의 자금을 투자해 주겠다는데, 해당 지자체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가덕도 신공항이 선정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동원해 반드시 바로 잡겠다”던 서병수 부산시장이나, “무조건 밀양이 돼야 한다”며 일간지에 광고까지 낸 대구ㆍ경북ㆍ경남ㆍ울산 시도지사들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선정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고, 유치 경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1년 6개월 전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떼부터 쓰고 나중에 뭐라도 얻어내 보자는 식이니 말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건 국회의원들이다. “지역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이니, 지역구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지역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은 지역을 대표하기에 앞서 국가를 대표해야 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의 딸’ ‘○○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달갑지 않다. 철새처럼 지역구를 옮겨 다니는 정치인들도 얄밉지만, 마치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만이 지역구 의원의 역할인 양 말하는 정치인도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
여당의 철옹성이라는 대구 지역에서 당당히 의원 배지를 달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껏 신공항을 밀양에 유치해야 한다며 앞장 서서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것을 보며, 야권의 대권주자 1순위라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덕도를 직접 찾아가 신공항 유치를 지지하는 것을 보며, 또 새누리당 부산 지역 의원들이 똘똘 뭉쳐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위해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또 지도자로서 그들의 그릇 크기를 의심하게 된다.
지역이기주의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혐오시설이 내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안 된다는 ‘님비(NIMBYㆍNot In My Back Yard)’와 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핌피(PIMFYㆍPlease In My Front Yard)’다.
최근 한 미국인 친구에게 ‘핌피’를 아느냐고 물었다. “‘님비’는 알겠는데, ‘핌피’는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했다. 하긴, 내 집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싫다는 ‘님비’는 미국 사회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현상이겠지만, 수익 시설을 무조건 내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며 지역끼리 다투는 ‘핌피’는 경험하기 쉽지 않았을 성싶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핌피’가 ‘님비’보다 훨씬 나쁜 지역이기주의 형태임이 분명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수익시설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지 않겠다고 정치인까지 나서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핌피가 판을 치는 사회, 그게 대한민국 국격의 수준일 것이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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