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7월 임시국회의 현안은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받고 독립성이 보장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기구 구성 문제다. “세월호 사건은 교통사고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형사법체계에 반하고 나쁜 선례를 남긴다.” 유족이 원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 전망을 매우 어둡게 만들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의원들의 발언이다. 이제 새누리당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양심과 새누리당 및 정권에 대한 여론의 압력뿐이다.
유족들의 특별법 요구 본질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심각하게 고장 난 우리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이다. 국회가 가동시킨 세월호 특위의 진상조사활동은 새누리당의 억지와 비협조, 정권의 자료제공거부, 정당정치의 본질에 반하는 국정조사법제로 인해 거의 진전이 없다. 철저한 수사로 형사적 정의의 실현에 봉사해야 할 검찰과 경찰은 정권수호기구로 전락한 채 핵심적 사실을 은폐, 왜곡하고 있다. 주류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방해를 뚫고 진실의 횃불을 밝혀야 할 사명을 져버리고 오히려 권력과 유착하고 있다. 주류 시민사회는 물질적 안락에만 관심을 기울인 채 정권의 심각한 타락을 방관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호소에는 냉소하고 있다. 유족들의 특별법 요구는 이런 우리 정치공동체의 총체적 무능과 불의를 극복해 보려는 몸부림이다.
누가 과연 온갖 의혹으로 점철돼 있는 미증유의 세월호 대참사를 단순한 해상교통사고로 규정해 버리고 싶을 것인가? 누가 세월호 대참사 정국을 사인을 비롯해 생사여부 자체가 의문에 휩싸인 유병언 개인의 비리문제로 끝내고 싶겠는가? 그들은 바로 진상조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과정이 복원된다면 정치적·법적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둘러싼 이치는 이렇게 자명한 것이다. 세상사에 어두운 이들을 미혹케 할 이런저런 법률용어를 끌어들여 여론전을 펴는 것은 특별법의 당위성을 흐리려는 기만적 언술일 뿐이다.
유족들의 요구는 명료하다. 과거 특검제의 전철을 피할 수 있는 진상규명기구를 가동시키자는 것이다. 과거의 특검제는 몇 가지 허점으로 권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권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에 대하여 독립성을 견지할 수 있는 특별검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담보하는 장치를 확보하지 못했다. 권력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현직 검사나 경찰, 기타 공무원이 특검에 파견돼 수사관 등으로 활동하게 했다. 수사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이런 요인 때문에 특검무용론이 나올 만큼 특검의 수사결과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내지 못했다. 유족들은 이런 특검 실패원인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국가기구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및 기소권 부여, 위원장과 상임위원 3인을 포함한 총 16인의 위원(모두 대통령이 임명) 중 위원장, 상임위원 1인 및 위원 6인의 유족추천권 인정, 진상조사위원회의 기본활동기간 2년 부여, 위원회의 진상규명활동을 행정적으로 원활하게 뒷받침하는 데 긴요한 위원장의 위원회 사무처장 임명권, 사무처의 조사관 3분의 1 이상을 공채로 채용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될 진상규명기구는 여러 차례 실시됐던 특검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막강한 권력이 곳곳에 펼쳐놓은 장애물을 돌파하기 위한 세심한 장치를 두고 있다는 것뿐이다. 특검제도 통상의 수사체계에서 벗어난 제도였다. 그것이 특검제의 본질이다. 특검제는 통상의 수사체계가 정치적 이유로 작동하기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민변, 다수의 법학자들이 입을 모아 유족 요구의 법리적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빈번하게 진실이 은폐되고 법이 왜곡되는 사회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진실을 밝히고 법을 곧추세우는 것이야 말로 권력의 심각한 타락·부패를 방지하고 정치와 국가에 대한 붕괴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유족에게 한 특별법 제정 약속을 지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실효성 있는 진상규명기구 구성에 반대한다면 결국 박근혜 정권에게 세월호 대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넘는 ‘중대한 법적 책임’이 있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태호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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