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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패 조장하는 명예훼손죄 대폭 손질해야

입력
2014.09.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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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된 질문에 “외부 인사 개입 등 비선이 움직이고 있다, 만만회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말이 세간에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박지원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정권이 감추고 싶은 일을 필설로 고발하는 이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명예훼손죄를 빈번하게 동원하다 보니 검찰도 그 반민주성에 둔감해진 모양이다. 세월호대참사 와중의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한 추측보도를 한 외국신문사 지국장까지 명예훼손혐의로 소환해 국제망신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죄로 투옥되는 전 세계인들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명예훼손죄 왕국, 대한민국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냄과 동시에 정권의 위신까지 침몰시킨 것이다.

급기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행위에 엄정 대처하기 위해 SNS까지 감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적잖은 네티즌들이 감시를 피해 사이버 망명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언론의 자유를 심히 위축시키는 현 명예보호법제는 우리 민주주의의 저급성을 반영한다. 이 법제에 옥죈 언로를 넓혀주기 위한 전향적 판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판례로 독소를 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대표적 해악은 공론장에서 진실에 의한 비판을 하는 이조차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나아가서는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받아야 할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진실 적시에 의한 ‘비방’도 처벌하기 때문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린 ‘허명’과 ‘썩은 기득권’도 두터운 법적 보호를 누린다. 반면 국가ㆍ사회의 방부제인 표현의 자유는 심히 후퇴하고 가치의 분배는 정의를 외면하게 된다.

개인의 비위 폭로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비위는 은밀히 행해졌더라도 보호가치가 있는 사생활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위폭로에 수반되는 명예실추는 그 폭로가 진실하고 또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처벌을 면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공익성은 물론 진실성도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위는 보통 은밀하게 저질러지고, 권력자는 진실의 부상을 막을 수도 있다. 제기된 의혹을 바탕으로 진실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대부분 권한 있는 국가기관의 조사, 특히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한 보완을 요한다. 그런데 권력은 검ㆍ경은 물론 법원에까지 손을 뻗쳐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의혹제기자의 형사법적 운명을 가르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검ㆍ경 및 법관의 직업윤리와 그 사회의 법치와 민주주의의 수준인 것이다.

이는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도 생사람을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고, 검ㆍ경은 물론 법원의 독립성마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의 단서마저도 허위로 둔갑하기 쉽다. 따라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사회의 정의나 투명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권력자가 저지른 비리의 실마리만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의 비리 폭로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선후보의 BBK 실소유주 의혹 제기로 1년형을 복역한 정봉주 전 의원의 사례에서 그 위험성이 실증됐다.

이처럼 명예훼손죄가 정권이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등 극소수다. 우리와 비슷한 법제의 일본도 우리보다는 나은 편이다. 불법사실 적시는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 국가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했거나 벌금형만 남겼고, 자유형이 있는 독일 등에서도 처벌사례는 극소수다.

공개적으로 모함을 받는 자는 대부분 자신의 수중에 있는 반증을 제시해 이를 무력화할 수 있고, 민사배상으로도 공연한 모해를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명예훼손죄의 폐지가 이상적이다. 완전한 폐지가 시기상조라면 명백한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이를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의적 행위’에 대한 처벌만 남겨두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동맥인 언로를 넓혀 공동체의 정의와 투명성을 고양하면서도 개인의 정당한 명예도 보호하는 길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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