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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갑질과 진상짓

입력
2014.1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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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대한 뉴스로 연일 시끄럽다. 직원에게 쏟아 붓는 모욕적인 폭언이 녹음돼 충격을 준 이도 있고, 땅콩 하나로 250명이 탄 비행기를 돌리게 만든 사람도 있다.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이고, 힘의 논리로 약자에게 행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요즘은 직장이나 사석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황당한 갑질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자신이 경험한 갑질도 풀어 놓는다. 억울하고 부당하지만 힘이 없어 참아야만 했던 상황,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내 잘못입니다”라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비참함. 그 동안 경험했던 울분들과 이제껏 알려진 수퍼갑들의 행동들에 대한 개탄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재벌이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다양한 진상짓들을 이야기한다. 전화 교환원에게 욕설과 성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는 사람,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하인 부리듯 함부로 하는 모습들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폭력들이 도처에 있음을 느낀다.

교수가 학생에게, 직장상사가 부하에게, 고객이 직원에게 하는 갑질과 진상짓이라는 이름의 언어적, 정서적 폭력은 사실 도처에 있다.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진상이 될 수 있다.

마트에서 아이의 머리핀을 사러 온 여성이 다른 색깔이 없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것이 다일 거라고 직원이 대답을 했다. 여성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성의 없이 건방지게 대답하고 다른 제품을 찾으려는 노력도 안 한다며 큰 소리로 “지점장 나와”하는 데 순간 당황한 직원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손님은 왕인데 이렇게 해도 되냐?”하는 말에 옆에 있는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왕이라면 가져야 하는 품격은 버린 것이 아닌지? 사실 요즘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손님은 왕이다’이다. 서비스를 강조하던 시기에 나온 말이 예전에는 호응을 얻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진상을 양산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 때문이다.

진상의 심리는 무엇일까? 왜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우기고 상대편의 적절한 대응에도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처럼 당한 곳에서는 차마 아무 말도 못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다른 곳에서 경험한 화와 분노를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마구잡이로 푸는 방식으로 엉뚱한 ‘투사’를 하는 것이다. 심리용어 중에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말이 있다. 정신분석에서 쓰는 이 용어는 괴롭힘과 고통을 당해 온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괴롭혀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건강하지 못한 방식을 이야기한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시어머니가 자신도 괴롭힘을 당했으면서 며느리에게 더한 시집살이를 시키거나,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모습 등을 이런 심리로 풀이하기도 한다. 괴롭힘 당하고 힘든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른바 수퍼갑들의 진상짓에는 이런 경우보다 자기애적 성격 성향(Narcissistic Personality)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자신의 감정, 권리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면 타인의 권리나 인격은 하찮게 느껴지고 존중하지 않게 된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타인의 감정,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용하고 착취하게 된다. 진정한 자존감이 없으면 왜곡된 방식으로 자기를 드러내려 하고 함부로 하는 상황을 통해 자신의 힘을 보이려는 못난 심리인 것이다.

갑질과 진상짓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배려이고 존중이다. 갑질에 대한 분노가 분노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갑질과 진상짓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작은 곳에서의 갑질과 진상짓도 사라지기를 바란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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