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아침을 열며] 기업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력
2014.12.25 20:00
0 0

경영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에게 기업과 기업인은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대학은 성장과 실패의 기업 생태로부터 기업 경영의 원칙과 전략의 적절성, 그리고 경영관리의 방법론 등을 탐구하고 기업조직의 운전을 담당하는 기업가의 철학과 비전, 행위로부터 경제조직으로서뿐 아니라 사회조직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을 이해한다.

우리사회 기업가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어제 오늘 우리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추행과 추문은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이 여전히 크로마뇽인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불법증여 및 탈세, 임직원들을 머슴으로 대하며 행한 상습적 폭언,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근로자에 대한 ‘맷값’ 폭행, 성추행과 성폭력 등. 무엇보다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승무원을 무릎 꿇려 질책하고, 출발한 비행기를 되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씨의 비상식적 행태를 통해 우리시대 기업과 기업인의 모습을 확인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대한항공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항공사로서 경쟁회사의 시장진입이 있기 전까지 정부의 배타적 지원과 시장 독점의 혜택을 누려온 대표 기업이다. 그들은 1962년 국영기업으로 설립돼 69년 3월 민영화됐다. 기업 연령 52세로 장년 기업이며, 근로자 수 1만8,247명의 대기업이다. 소유구조에서 차지하는 지배주주의 비중은 47.83%이며 그 외 국민연금이 6.61%, 외국인이 18.7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로 보면 오너경영의 전형적인 기업이다. ‘한진칼’이 지주회사 격이며, 조양호 회장이 지배적 소유권을, 조현아씨 등 세 자녀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지분을 각각 2.5%, 1.08%씩 균등 보유하는 구조다.

이번 일로 대한항공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 무엇보다 사건 초기, 사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과, 반성이 이어졌다면 일이 이 정도로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건 발생 후 실체를 덮어 은폐하고 상황을 왜곡했으며 직원들을 협박해 위증을 강요했다. 결국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증거의 조작 및 사실 은폐과정에 조력한 국토부 조사관과 대한항공 임원 등을 체포했다. 검찰이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적용한 혐의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 저해, 폭행과 형법상 강요 및 업무방해 등인데 대부분 조 전 부사장이 부인해 왔던 내용이 구속이유로 인용됐다.

당사자와 공모자들에 대한 처벌도 처벌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기업 대한항공의 기업가치 훼손, 기업이미지 실추, 임직원들이 겪게 될 열패감 등이다. 특히 항공업은 소비자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사업이기에 영업에서 기업의 신뢰도, 이미지 및 안정감 등이 갖는 가치는 매우 크며 이의 손상은 곧 기업가치의 추락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업의 이미지를 가꾸고 지켜야 할 경영자가 이를 훼손했다. 임직원들이 받는 급여 평균의 10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 등기이사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조 전 부사장은 비상식적 불상사로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사건의 뒤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위기관리 시스템과 조직문화는 대한항공의 지속가능성에도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이의 경제적 손실이 얼마란 말인가.

기업은 경영의 과정에서 다양한 위험에 직면하며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여부는 경영 성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래 전부터 학자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주요한 위험요인으로 ‘지배구조’에 주목해 왔으며, 그 중에서도 CEO와 특수관계인이 초래할 리스크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대한항공은 이런 경영인 위험의 전형적 사례가 됐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제안했다. 이를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적용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요청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최근 이런 사회책임은 기업경영의 옵션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분을 이기지 못해 승무원을 폭행하고 출발한 항공기를 되돌리는 반노동주의와 법률부정의 현실 앞에 기업가로서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