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문항이 있다. 영희와 순희가 아파트를 사러 간다. 아파트 가격이 1억이다. 영희와 순희는 1,000만원만 있고 9,000만원을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야 한다. 은행 이자율은 연 3%이고 30년 동안 상환하려고 한다면 영희와 순희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하여 매달 얼마씩 은행에 상환해야 하는가?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남녀부부가 하는 일을 스웨덴은 수학이나 사회 교과서에서 이렇게 두 여자 또는 두 남자가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선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리는 동성애를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성교육을 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라는 표현은 다수를, 동성애는 소수를 의미하는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는 우리는 정상이고 동성애는 이해해야 하는 비정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학교는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 정체성이 결코 비정상이거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교과서에서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가 3월 말 각 시도 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전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연수 자료에 따르면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음” “다양한 성적 지향 용어 사용 금지 및 삭제 요구” 또는 “성소수자 내용 삭제 요구”를 명시하고 있다. 표준안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성교육’이란 제목 하에 이와 같이 동성애 및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시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금지를 담고 있는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선포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아직도 계류 중이다. 교육부의 ‘사회적 합의’ 요구, 서울시의 ‘사회적 갈등’ 회피 또는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계류의 배경에는 보수(기독교)단체의 엄청난 반대와 항의가 있었다. 201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때에도 이들 단체의 반대는 격렬했다.
성소수자나 동성애 반대와 혐오는 대체로 이것이 반자연적이거나 병적이라고 보는 견해에서 기인한다. 과연 그런가? 과학자들은 1만5,000종이나 되는 동물 세계에서도 동성애가 존재하여 인간의 동성애가 자연 상태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럼 이 문제를 사회적 합의나 민주주의로 결정해야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권 문제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나 민주주의가 언제나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독일의 나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탄생된 정권이다. 그렇다고 이 정권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탄압과 학살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인권선언은 보편적 인간의 존엄성을, 우리 헌법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보편적 인권문제로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 하에 다수의 횡포를 방임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사회적 합의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류의 약 10%는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성이 억압된 사회에서 국민의 10%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숨겨야 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엄청난 불행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할 권리가 있고 이 기본권을 지켜주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다.
교육부는 이번 성교육 표준안을 취소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에 기초한 올바른 성교육을 실시하기를 촉구한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누구도 성적 문제로 차별당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법제정이 급선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희와 순희가 신혼아파트를 사러 가고 철수와 민수가 환히 웃으며 시장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증오나 혐오로 인해 생기는 문제보다 작고 적다.
황선준 스톡홀름대 정치학 박사ㆍ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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