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앤 더 시티’. 휴가 기간 내내 주인장의 취향이 스며있는 오밀조밀한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길거리 주전부리를 사먹고, 거리의 꼬마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동네를 산책했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이를 “쇼핑이면서 동시에 산책이고 산책이면서 동시에 도시와 나누는 특수한 방식의 대화”라고 적었다. 평범한 동네도 이렇게 거닐다 보면 반짝반짝한 여행지가 된다.
그러다 문득 서늘한 현실을 체감했으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ㆍ땅값 임대료 상승으로 원래 살던 영세업자와 예술가 등이 밀려나는 현상)이라는 유령이 우리 동네, 망원동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 100m 이내에서 오래된 집들 다섯 채가 동시에 헐려나가고 있었다. 터줏대감처럼 동네에 박혀있던 낡은 세탁소에는 ‘폐업’이 나붙었고, 잎을 다 떨구고도 열매를 매달고 있던 감나무는 포클레인에 단박에 스러졌다. 동네 산책 중에 마주친 세탁소 주인장은 “요새 망원동에 연남동 찍은 투기 자본이 들어와 낡고 싼 건물은 모조리 사들이잖아, 우리 같은 가게들은 다 쫓겨나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양시로 옮겨간다고 덧붙였다. 낡고 허름한 공동주택에 살던 토박이들이 쫓겨나고, 그들의 일상을 담고 있던 동네 가게들이 사라진다. 바야흐로 장소가 지닌 고유한 의미를 파괴하는 대가로 땅값이 오르는 시대였다.
몇 해 전 합정동에 살았던 때도 그랬다. 낮고 나지막한 빌라들로 이뤄진 동네의 능선이 초고층 주상복합쇼핑몰의 마천루로 돌변했다. 나는 둘레를 걷는 데만 족히 10분은 걸리는 그 건물의 밋밋한 벽 앞에서 덴마크를 떠올렸다. 덴마크 대도시에서는 은행 신규 지점 개설을 규제하는데, 보안상 창문이 거의 없고 벽으로 점철된 모양새가 거리의 사회성을 해치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드는 거리의 특징은 지루할 틈 없이 공간을 수놓는 작고 다양한 가게들과 서로에게 눈요기 거리가 되어주는 타인들의 존재다. 김영하 식으로 말하자면 끊임없이 ‘특수한 방식의 대화’가 오고 가는 거리, 덴마크 식으로 말하자면 사회성을 갖춘 거리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폭력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노고와 생기를 곰국처럼 우려낸 장소가 ‘격변을 일으키는 돈’에 단숨에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 플래그 숍만이 덩그러니 남아 문화백화현상을 증언한다. 생기가 사라진 거리는 결국 쇠락의 길에 접어드는데, 이미 홍대 메인 거리에도 몇 달째 비어있는 가게가 생겨났다.
며칠 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한남동의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다녀왔다. 이곳은 카페이자 동네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의 레지던시로, 카페 운영이 힘들 때에도 9년간 쉬지 않고 작가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타인을 품어주던 공간은 자본을 주단처럼 깔고 밀어내는 프랜차이즈에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곳의 대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린 인터뷰에서 “일본과 유럽에선 작은 동네 가게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막아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져요”라고 했다. 퍼뜩 ‘작고 오래된 단골집을 가질 권리’가 자본가의 사업권에 버금가는 사회권임을 깨닫는다.
재개발된 바닥면적의 30%를 이전 집세와 같은 수준으로 원주민에게 임대하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상가가 정주할 수 있도록 최소 9년간 임대차 계약을 보장하는 프랑스, 주택개발 때 시가 정한 임대료에 따라 10~25%를 저소득층에게 할당하는 미국의 벌링턴.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고 평등한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이다.
국내 최초로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 조례’를 만들었고,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가 결성돼 쫓겨날 위기에 처한 가게들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미 잘려나간 옆집 감나무에게 안부를 물을 수는 없지만, 작고 오래된 동네 가게들을 이용하고 지켜내는 다정한 한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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