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육군사관학교.
“북한이 왜 못 쳐들어오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너 퇴근하면 술집 가지? 당구장 가지? 방위병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대체 없는 곳이 없잖아. 비상식량(도시락)까지 들고 다니는 우리 정체를, 북한 애들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는 거지. 그러…”
사관생도들이 연병장을 빠져나가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선임 방위병의 우스갯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날 우리 임무는 빗자루를 들고 눈에 띄지 않게 담 밑에 숨어 있다 생도들이 빠져나간 연병장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당시 아련히 멀어지던 노래, 바위섬.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그곳에……, 방위들만 남아 비질하던 그 사건을 추억으로 갈무리한 것은 선임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결혼을 해서 그런지 어딘가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직업을 물으면 그림을 그린다면서 얼버무리곤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동양화가의 그림을 대신 그리고 있었다. 그 화가를 정말 모르냐고 되물었던 것을 보면, 꽤 이름난 화가였지 싶다. 그 화가는 선임 방위병에게 호당 얼마씩 돈을 쳐주고 산 그림에 자신의 낙관을 찍어 꽤 비싼 값에 되판다고 했다. 그는 방위 일과가 끝나면 연병장처럼 넓은 화선지에 숨어들어 비질을 하듯 그림을 그렸다. 사실 그는 술집에도 당구장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그런 류의 그림을 화랑에서 가끔 보았다. 그때마다 연병장과 화선지를 쓸어대던 그가 떠올랐다.
조영남 씨 그림으로 사회 한편이 소란스럽지만, 예술의 밑바닥을 너무 일찍 보아선지 사는 일이 온통 진부하기만 하다. 작가의 기운을 중시하는 동양화도 30년 전 그런 판이었으니, 콘셉트를 중시하는 요즘 대작(代作)이 뭐 그리 대순가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서양 미학을 전공한 몇몇에겐 이 소란이 참을 수 없는 무식의 소치로 보인 듯하다.
미학자 진중권 씨는 개념미술을 이해 못 하는 대중의 고루함을 이야기한다. 그럼 그 화투 그림이 정말 개념미술이란 말인데…, 다양성이 생명인 예술에서 현대미술은 다 개념미술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도 되나 싶다. 알제리 태생의 철학자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내 몸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과 관계’된다. 이때 세계를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사회로 보면, 예술 세계가 얼마나 다양할까. 이 드넓은 예술 세계를 개념미술로 덮으려는 건 좀 과해 보인다. 현대미술이 맥도날드 햄버거도 아니잖은가. 우리 대중에겐 우리 나름대로 예술을 느끼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 미학자처럼 서양사람 눈으로 예술을 한번 보자. 회화에 개념미술을 갖다 붙였으니, 그림을 보자. 말레비치가 그린 ‘검은 사각형’이라면, 개념미술을 말해도 될 것 같다. 이 작품에선 오직 이성의 ‘추상’이라는 콘셉트만 중요할 뿐 누가 색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회화에는 정반대의 것도 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중요한 것은 화폭에 힘차게 굽이치는 붓질이지 콘셉트가 아니다. 오히려 화가의 기운과 표현력이 작품의 전부다. 보기에 따라선 두 극단 사이에 수많은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어떤 작품은 콘셉트가 90%고 어떤 작품은 화가의 힘이 90%라는 식의. 그러나 이 비율의 애매성을 들어 모든 작품에 개념미술을 용인하는 건 곤란하다. 여기서 콘셉트는 예술로 확장된 돈벌이 시스템의 우아한 이름일 뿐이다. 그런 논리라면 30년 전 그 동양화가를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대접해야 예의일 것이다. 그도 콘셉트를 말하고, 덧칠도 몇 번 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개념미술을 대하는 이 미학자의 태도에서 조선 선비의 고루한 지적 사대주의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게다가 품값만 제대로 쳐주면 된다는 태도에까지 이르면 우리 진보와 보수가 사실은 한 뿌리라는 생각도 든다. 예술이 시시하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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