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범죄가 지능화하고 인권의식도 신장하면서 거짓말탐지기는 경찰 수사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거짓말탐지기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갖춘 과학수사 기법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거짓말탐지기 수사 실적은 2012년 5,960명에서 2013년 8,337명, 2015년 8,502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전문 교육을 받은 검사관 34명이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소속돼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경찰은 1965년 서울시경찰국(현 서울경찰청) 강력계에서 미국이 원조물자로 제공한 거짓말탐지기를 수사에 도입했다. 79년 대기업 회장 아들이 여고생을 살해한 ‘백화양조 사건’은 거짓말탐지기 수사 역사에 이정표로 기록됐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로부터 허위 반응을 얻어내 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성과를 냈다. 다만 대법원은 거짓말탐지 결과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법부는 보수적 견해를 고수했지만 이후 거짓말탐지 수사 역량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사건뿐 아니라 교통사고, 사기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민생 범죄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이 거짓말탐지기를 통해 해결된 경우도 여럿 있다. 올해 1월 서울 송파구에서 20대 여성 A씨가 자택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을 거쳐 A씨와 함께 집으로 들어간 남성 B(39)씨를 검거했고, B씨도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경찰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닥쳤다. B씨는 살인 혐의를 시인하면서도 ‘A씨가 사는 게 힘들어 죽여달라’고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형량이 살인죄보다 낮은 촉탁살인죄(피해자 의사에 따라 살해하는 것)를 적용해야 했다. 거짓말탐지기는 이 때 위력을 발휘했다. “강제로 성관계를 했느냐”는 검사관의 질문에 B씨는 “아니요”라고 답했지만 탐지기 모니터에 나타난 분석 결과는 적색(거짓반응)을 가리켰다. B씨는 결국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처럼 거짓말탐지 결과는 꽤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이 거짓말탐지 조사 등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돼 기소된 사건 중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를 취합한 결과 일치율 94%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 기법 발달과 높은 활용 빈도에도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여전히 법정에서 외면 받고 있다. 재판부 재량으로 정황증거, 즉 판결하는데 ‘참고 사항’ 중 하나로 인식되는 정도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이재석 경위는 “논리적인 질문과 답변을 전제로 한 거짓말탐지기의 정확성이 이미 입증됐는데도 사법부는 유ㆍ무죄 여부를 가르는 주요 증거자료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거짓말탐지 조사가 명백한 정황증거로 채택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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