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해결된 굵직한 미제사건들의 공통점은 ‘의성 남편 청부살인’처럼 주변 제보가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달 19년 만에 해결된 ‘안양 호프집 여주인 살인’은 112 신고전화에서 단서가 나왔다. 제보자가 우연히 당시 사건이 소개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피의자 이름을 기억해 경찰에 알려준 것이다. 해당 사건은 1997년 경기 안양의 한 호프집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던 A씨가 이를 나무라던 여사장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중국으로 도피해 미제로 남아 있었다.
올해 5월 제보를 받은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팀은 사건 당시 수배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용의자였던 A씨 신원이 제보자의 진술 내용과 일치하는 점을 파악했다. 탐문ㆍ통신수사에서도 국내에 있는 A씨 어머니가 특정인과 반복적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A씨와 이름이 달랐다. 수사팀은 미심쩍은 생각에 97년 출입국관리사무소 기록에 남아 있던 A씨 지문과 어머니의 통화 상대자 지문을 대조했다. 일치했다.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경찰은 결국 피의자가 국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추적 끝에 지난달 27일 경기 수원에서 그를 붙잡았다. 육승수 송파서 강력 4팀장은 7일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는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솔직히 반신반의했다”며 “담당 형사가 제보 내용을 허투루 듣지 않고 끈기 있게 확인 과정을 거친 것이 미제사건 해결의 열쇠가 됐다”고 말했다.
2011년 해결된 전남 해남 암매장 사건도 피의자가 술자리에서 실수로 한 한 마디가 수사 재개의 단초가 됐다. 2004년 분양대행 사업을 한다고 속여 대출사기를 일삼던 B씨는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바지사장 겸 명의자 모집책을 숨지게 한 뒤 해남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이 사건 역시 2007년 음주 상태에서 “살인을 했다”는 B씨 얘기를 들은 지인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청 미제사건전담팀은 제보 접수 후 피해자의 신용카드 사용 및 통화 내역 등을 토대로 실종 시점을 확인했다. 또 제보자가 언급한 사건 발생 시기에 B씨가 분양사무소를 운영했는지와 해남을 찾은 B씨의 차량 행적을 조회해 4년 만에 전모를 밝혀냈다. 정지일 서울청 미제사건 팀장은 “제보를 단순한 풍문으로 치부했다면 영원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장기미제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제보 등 국민의 꾸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 발생 당시 가용한 수사력을 총동원하고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범행 증거와 관련 증언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때문에 마지막 실마리는 해당 사건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주변인의 제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재식 경찰청 강력반장은 “시민들의 작은 제보 하나가 경찰의 끈질긴 집념과 합쳐질 때 미제 사건은 더 이상 미제로 남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 잊어도 될 범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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