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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불체포특권 포기의 대가

입력
2016.08.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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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의원 등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은 이들을 제명하거나 출당시키려 했다고 한다. 이미 기소만 돼도 당권을 정지시키겠다고 공언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기소편의주의가 점점 더 힘을 얻는 현실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기소편의주의는 똑같은 사람을 두고도 검사가 기소해서 벌을 줄 수도, 기소하지 않고 풀어줄 수도 있는 제도다. 정당 운영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의원 제명을 기소와 연계시키겠다는 것인지. 아무려나 이는 국민의당 내부문제니 내 관여할 바 아니지만, 요즘 정세균 국회의장의 행보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는 국회의원이 제일 먼저 내려놓을 특권으로 불체포특권을 꼽았다. 설마 ‘특권’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불체포특권은 ‘범죄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이라도 국회가 열려 있으면 일정한 조건에서 자유롭게 국회에 참석하게 하는 헌법 규정’이다. 언뜻 부당한 특권 같기도 하고, 이를 남용하는 것이 밉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은,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검찰과 경찰을 장악한 행정부로부터 정의를 지켜내라는 헌법의 명령에 가깝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함부로 잡아 가두고 국정을 농단하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로, 이는 비행기를 공짜로 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겪었으면서도 야당 출신 국회의장 입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라는 말이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불체포특권은 위에서 말한 기소편의주의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대통령과 여당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사람을 데려다 쓸까.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야 없지만, 어림짐작은 해볼 수 있다.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윤상현 의원이 4ㆍ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김성회 전의원과 한 통화 내용을 보자. “형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어. 형에 대해서.” 그는 노골적으로 동료의원을 협박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계속 수사를 지시한 채동욱 검찰총장의 허물을 들추어내 쫓아낸 일을 돌이켜보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들에게 기소편의주의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그런데 윤상현 의원이나 청와대에 야당 인사에 대한 자료는 없을까.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고, 국회 안팎에서 사퇴를 종용받고 있지만, 우병우 민정수석은 꿈쩍도 안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요지부동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허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 수석을 내치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우 수석이 박근혜 정권에 민감한 내용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언론의 추측도 있다. 이쯤 되면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 그대로다. ‘서로 구린 놈끼리 같이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괜찮지 않겠나.’ 구릴수록 정은 돈독해지는 모양이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시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석수 감찰관이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자 청와대가 노발대발하며, 이 감찰관을 수사하라고 나섰다. 지금은 기소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왜곡된 기소권은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유산이며 민주주의를 더럽히고 정의를 파탄 낼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다. 이 위험한 물건을 정치권력이나 검사의 선의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 누구든 죄를 지으면 기소되는 기소법정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왜곡된 기소권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칼이다. 우선 기소권부터 옳게 만들자. 월급쟁이 국회의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다 보니, 착한 월급쟁이로 천년만년 살고 싶은 것인지. 왜 야당이 나서서 민주주의 최소한의 방패까지 내팽개치려는지 모르겠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 편에 선 의로운 국회의원이다.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정의를 세우라는 헌법의 애끓는 요청이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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