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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최후의 건축

입력
2016.09.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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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니 벌초하느라 전국적으로 붐빈다. 명절 귀향행렬만큼 도로가 막힌다. 그러고 보면 추석은 추모의 계절임이 틀림없다. 일 년에 한번 조상 묘소를 벌초하는 때가 바로 추석 즈음이니까. 올해도 일이 바빠서 아버지와 같이 나서지 못했다. 어릴 적엔 해마다 아버지를 따라 시골 산소에 다녔다. 둥그런 봉분이 신기하기도 하고 묘한 느낌도 들었다. 망우동 부근에 살면서 아침 산책길에 무덤을 지겹도록 봤기 때문인지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근했다. 저 둥글고 조그만 산 안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갈까 그게 궁금했을 뿐.

무덤과 관련해서 제대로 경험한 것은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던 때였다. 이른 아침에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깨우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좀체 졸음을 몰아낼 수 없었다. 곧바로 문상객이 들이닥쳤고 온 식구가 음식과 술을 나르며 정신없었다. 오일장을 집에서 치렀다. 집 앞에 천막을 대여섯 개 치고 밤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누워계신 병풍 뒤가 자꾸 신경 쓰였다. 거기에 잠든 듯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이전의 그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장지에 가서 또 하루 장을 치르고 아침에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산이었지만 얼굴도 잘 모르는 마을 어르신들과 친척들은 힘을 쓰며 상여를 산으로 올렸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하관 의식은 보통 묘안에 관을 넣지만, 우리 집안 풍습은 달랐다. 관에서 할아버지를 꺼내고 (이때가 할아버지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묘에 안치했으며, 관은 옆에서 불에 태웠다. 무더운 여름의 햇볕 아래 타들어 가던 관의 모습이 아직도 그 열기와 함께 선명하게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무덤은 단순히 흙을 쌓아 올린 덩어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보내며 보았던 며칠간의 기록이 전부 담겨있는 하나의 앨범 같았다.

몇 해 전 벌초 때 아버지가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무덤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 후손이 없으면 무덤이 없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누군가가 묻히고 사라지고 또 묻히는 게 이 땅이 지켜봐 온 삶의 모습인 것일까. 결국은 모든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해외여행 중 만난 두 거장 건축가의 무덤은 또 다른 시각으로 묘소를 바라보게 했다. 르꼬르뷔지에라는 거장의 무덤은 너무나 소박해서 그가 생전에 설계한 건축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작은 조형물 같은 작은 묘석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디자인과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일관성 있게 똑같은 화강석 비석만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우리에게 콘크리트 묘석은 신선했다. 건축가의 건축가 같은 존재인 카를로 스카르파의 묘소 역시 특별했다. 스카르파가 직접 디자인한 브리온 가족묘소는 조각같은 콘크리트를 구사해온 스카르파의 역작과도 같은 건물이다. 한구석에 놓여있는 그의 묘소는 자신의 이름과 생몰 연도만 담고서 돌, 콘크리트, 금속 등 그가 즐겨 사용한 재료들로 소박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건축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들의 묘는 화려한 미사여구도, 수식어도 없지만 건축가다운 감각이 넘쳤다.

건축가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공간을 감싼 재료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한다. 현대 건축에는 놀랄만한 재료들이 다양한 활용되고 기상천외한 감각을 뿜어내기도 한다. 인간을 담는 공간에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만 죽음의 공간은 아직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가 죽음을 외면하듯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방불케 하는 공원묘원의 비석과 상석을 보노라면 획일화된 추모의 문화와 죽음의 건축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종묘라는 멋진 추모의 공간을 만들었던 우리 문화의 힘은 어디로 간 것일까. 죽음의 건축은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을 응축시킨 최소한의 건축이어야 할 것이다. 출발은 역시 현재의 삶이다.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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