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치인의 단식으로는 김영삼(YS)의 단식이 단연 돋보인다. 그는 1983년 5ㆍ18 3주기를 맞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에게 기사화를 부탁하는 등 사전 준비도 마친 상태였다. 단식이 길어지자 전두환 정권은 그를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권익현 사무총장을 보내 단식을 중단하면 해외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에 YS는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며 면박을 주었다. 23일에 걸친 그의 단식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였다.
▦ 정치 역정이 유난히 고단한 김대중(DJ)이지만 정작 단식은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1990년 평민당 총재 시절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하자 여당(민자당) 대표로 변신한 YS가 찾아왔다. DJ는 “나와 김 대표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민주화라는 것이 무엇이오? 바로 의회정치와 지자제가 핵심 아닙니까? 여당으로 가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다고 어찌 이를 외면하려 하시오”라고 했다. 5ㆍ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자제의 부활에는 66세 고령이던 DJ의 단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단식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곡기를 끊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YS 정부에서 내란죄 등으로 구속된 뒤 단식에 들어갔다가 식중독에 걸려 중단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단식을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라고 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을 때 YS가 “굶으면 확실히 죽는다”고 한 것은 그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단식을 한다는 정치인이 잠깐 화장실에 들어가 카스텔라를 먹는다거나 곰탕을 먹었다는 구설에 휘말리는 것도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 단식은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비장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정치인의 단식은 자기과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여당 대표로는 유례 없는 단식에 들어간 것도 다르지 않다. 비공개 공간에서 하는 단식이라 ‘밀실 단식’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반면 단식의 목표로 삼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는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도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으니 며칠이나 굶어야 체면치레가 될지 궁금하다.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이 동조 단식에 들어가면서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박광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