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 소식을 듣고 곧바로 건축주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리모델링한 벽돌조 집이 특히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지진이 일상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될 줄이야. 이제 ‘내진설계’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내진설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SNS를 통해 공유되고 심지어 ‘우리 아파트는 내진설계가 되어있습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문구도 등장했다.
경주 지진 때 “내진설계가 되었으므로 대피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방송한 어느 아파트 이야기가 방송에 나왔다. 정말로 안전할까. 내진설계는 어느 정도까지의 안전을 확보해 줄까. 사람들은 내진설계는 완벽한 완전을 보장해준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끄떡없습니다’라는 대담한 문구를 쓰는 광고와 고작해야 건축물이 법적 기준을 준수했는지만 확인하는 기사를 보면 묻고 싶다. 법적 기준 여부만 판단하면 ‘안전’은 확보되는 걸까.
우리나라 법적 기준에서 내진설계는 이렇다. ‘중간 규모의 지진에서는 비구조재의 손상을 허용하며 구조재는 손상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번에 뉴스에서 자주 언급된 규모 6.5가 중간 규모다. 그러나 명시되어 있듯이, 6.5의 지진이 발생할 때 구조물 자체는 손상이 없을지라도 비구조재는 손상이 생길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비구조재가 무엇일까. 콘크리트의 건물의 경우 기둥, 바닥, 벽, 천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구조재다. 건물 외부에는 돌이나 벽돌, 커다란 금속 패널이 붙기도 하고, 유리 창문이 붙는다. 어떤 건물은 통유리로 설계되기도 한다. 건물 내부를 살펴보면 천장 마감재와 조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마감재 속은 각종 설비 배관들로 가득 차있다. 이 모든 것이 비구조재이며 지진이 발생하면 손상될 수 있는 것들이다. 천장 마감재나 조명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질 수 있다. 높은 건물에 붙은 두께 3㎝의 돌판이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천장 내부를 지나는 환풍구와 공조 설비가 무너진다면.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피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진설계를 규정하는 법에는 비구조재에 대한 규정도 어느 정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 현장에서 비구조재에 대한 내진설계나 시공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허가 업무나 감리에서 비구조재의 내진설계를 검토할 방법이 없고 누가 검토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더욱 꼼꼼해야 마땅한 부분이지만 여태 외면당해왔다. 하긴 우리나라에 큰 지진이 올 것이라고 누가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그나마 다행한 것은 올해 초부터 소방 설비 부분에 대해서 내진설계를 구체화한 시행령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진 때문에 화재가 났을 때를 대비한 소방 설비를 제대로 하는 일이므로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건축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걸출한 건축가인 이토 도요(伊東豊雄)가 지진과 재난에 대해 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센다이 미디어센터’도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규모 9.0이었으니 아찔한 수치다. 그러나 이 건축물은 부분적으로 유리가 파손되었고, 7층의 천장재 일부가 부서졌으며 서가에서 책이 떨어졌다. 구조는 손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잘 견뎠다 싶은데도 이토는 다르게 생각했다. 지진에 대비해 구조재뿐 아니라 마감재까지 깊이 연구하면서 설계했는데도 손상된 부분이 있다며, 누군가 다칠 수도 있었다고 자책했다. 완벽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진에 진정 안전한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참고로 우리의 내진설계는 그 정도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구조재의 손상을 가정한 상태에서 사람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의 구조 성능을 확보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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