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PC 연결해 즐기는 HTC ‘바이브’ 화질 뛰어나 실감
“시장 전망 밝다” 확신 심어줘
오큘러스 ‘리프트’와 2파전에 저가 매력 소니 PSVR 가세
스마트폰 이용 헤드셋도 봇물… 中, VR 체험방 성업 등 열풍
전세계 VR게임 시험장으로… 한국도 스타트업 육성 서둘러야
‘가상현실(Virtual RealityㆍVR) 시장이 과연 열릴 것인가?’
올해가 VR 원년이라고 떠들썩했지만 항상 이러한 의문을 품었다. 몇 년 전 미래기술이라며 뜨거웠다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3차원(3D) 입체 TV처럼 신제품을 팔아먹으려는 전자업체들의 전략적인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서다.
큰 잠수경처럼 생긴 헤드셋에 스마트폰을 붙이고 VR를 체험해봤지만 그다지 대단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내 경험은 ‘아, 이게 가상현실이구나’ 하고 신기해하는 정도에서 끝났다. 가상현실 세상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자리에 서서 보기만 할 뿐이고 화질도 조악해서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시애틀에 출장을 갔다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만 업체 HTC의 VR 헤드셋 바이브를 통해 가상현실 체험을 하면서다. 그 뒤 VR 시장이 열릴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바이브는 헤드셋에 스마트폰을 끼우는 것이 아니라 헤드셋을 컴퓨터(PC)에 연결해서 즐기는 방식의 VR 헤드셋이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의 제품과 함께 소비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VR 기기다. 고성능 PC를 연결한 전용기기인 만큼 화질이 뛰어나 몰입감이 높다. 또 헤드셋에 탑재된 감지기(센서)로 방안에서 사용자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 사용자의 움직임을 가상현실 세상에도 반영해준다.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뒷걸음질을 치면 가상현실 세상이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또 동작 제어 도구(모션 컨트롤러)를 양손에 잡고 움직이면 가상현실 속에서 물건을 만지거나 이동시킬 수도 있다.
처음 체험한 시험판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난파선 위에 서있는 설정이었다. 물고기들이 오가는 것을 두리번거리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고래가 앞을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시험판은 화살을 쏴서 성에 들어오려는 적군을 막는 게임이었다. 양 손에 든 컨트롤러 덕분에 화살을 쏘는 것이 제법 실감났다. 생각보다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산 위에 서있었다. 컨트롤러를 이용해 산 위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서 주위 경치를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10분간의 시험판 체험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정도라면 계속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VR 체험을 한 어린 꼬마도 엄마에게 “굉장히 흥분되고 재미있었다”고 외쳤다.
VR 시장은 춘추전국시대
그렇다면 현재 세계 VR시장은 어떤 모습인가. VR 시장은 아직 시장을 주도하는 승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VR 하드웨어시장은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 간의 2파전에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VR’(PSVR)를 출시하면서 경쟁에 가세한 양상이다. 지난 4월 말 발매된 HTC 바이브는 가장 앞선 VR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헤드셋은 799달러(약 90만원)고, 여기에 모션 컨트롤러를 포함하면 949달러(108만원)다. 워낙 가격대가 높은 데다 추가로 고성능 PC까지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금까지 14만대가 판매됐다.
페이스북이 지난 2014년 2조5,000억원에 인수한 오큘러스는 리프트라는 헤드셋을 내놨다. 12월에 출시되는 모션 컨트롤러를 포함하면 798달러(91만원)로 결코 싸지 않다. 이 제품 역시 PC에 연결해서 써야 한다.
가장 뛰어난 VR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이 두 제품이지만 고가에 설치가 어렵고 즐길만한 콘텐츠가 많이 나오지 않아 아직 대박 상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PC를 포함하면 200만원이 휠씬 넘게 든다.
최근 전 세계에서 발매된 소니 PSVR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HTC 바이브와 오큘러스 리프트가 PC와 연결해야만 쓸 수 있는 것과 달리 PSVR은 전 세계 4,000만명에 이르는 가정용 게임기(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PS) 사용자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PS에 연결해 쓸 수 있다. 가격도 모션 컨트롤러를 포함해 500달러(57만원) 정도로 경쟁 제품에 비해 저렴하다. 출시 첫 주 일본에서만 5만대가 팔렸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흥행의 관건은 앞으로 훌륭한 VR 게임과 콘텐츠가 PSVR 플랫폼에 얼마나 쏟아지느냐에 달렸다.
저렴한 가격에 VR를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장착해 사용하는 모바일 VR헤드셋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오큘러스와 합작해서 내놓은 기어VR의 경우 99달러(11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갤럭시S7, 갤럭시노트5 등 삼성전자 고가 스마트폰만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구글은 골판지로 만든 초저가형 헤드셋에 렌즈를 붙인 ‘카드보드’에 이어 누구나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쉽게 VR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데이드림 뷰’를 선보였다. 데이드림 뷰는 80달러(9만원)의 중저가형 헤드셋이다. 11월 시판 예정인 데이드림 뷰는 구글의 스마트폰 신제품인 픽셀을 끼우고 VR 체험을 할 수 있다. 구글은 앞으로 데이드림 뷰 이용 가능 제품을 다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 스마트폰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중국에서도 스마트폰을 끼워 가상현실 체험을 할 수 있는 헤드셋이 수십가지 이상 나와있을 정도로 VR헤드셋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VR기기ㆍ체험방 봇물인데 한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는 이들 VR플랫폼 위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수 많은 VR관련 신생 혁신 기업(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 중이다. 여행 상품의 경우 VR를 활용하면 세계 각국의 이색적인 여행지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 콘서트나 강연 등을 현장감 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나오고 있다. 모델하우스를 만들지 않고도 고객들이 신축 아파트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도 인기다.
이 같은 VR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이웃나라 중국이다. VR 열풍이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다. 중국 정보기술(IT) 매체인 테크노드의 유채원 기자는 “중국기업들이 VR 기술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가운데 VR 체험방이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중국이 전 세계 VR 게임의 테스트베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중국에선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정액을 내면 HTC 바이브 등 고가 헤드셋을 이용해 다양한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VR 체험방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IT 업계에서는 이미 3,000개이상의 VR 체험방이 중국에 생겨났으며 이를 통해 중국인들이 VR에 큰 호감을 느끼게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국의 대기업과 투자사도 VR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VR 시장이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오큘러스나 HTC 바이브같은 고성능 VR헤드셋이 정식 발매되지 않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VR 체험을 하기도 어렵다. 각종 규제 때문에 중국처럼 VR 체험방이 들어서기도 어렵다. 경험을 해본 사람이 적은 만큼 VR 관련 스타트업도 많지 않고 관련 투자 규모도 크지 않다.
VR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장유진 심사역은 “한국에서 VR 투자가 활발하지 않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다”며 “한국에서 더 많은 VR 스타트업이 나와야 하고 투자도 더 많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할 VR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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